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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량 김종빈 Jan 21. 2022

나이 마흔이 다 되어가면서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는 이유

트로피

 내게는 승리의 기억이 없다.


 승리한 적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 승리한 적이 여러 번 있었고,

그중에는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한 것들도

여럿 있었다.


 그럼에도 내게는 승리의 기억이 없다.


 "이겼다."를 연신 외치며 포효하던

승리의 기억.


 삶의 수많은 굴곡을 지나면서도

내가 결국 이길 거라는 확신을 허락하는

승리의 기억.


 어떤 날, 마음의 갈증으로 무너지고

온몸의 피로가 나를 세상 모든 것으로 파묻어도

손을 치켜들 수 있는 승리의 기억.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


 아마도 진 탓일 거다.

삶에서 크고 작은 승리들이 있었음에도

그때마다 마음은 무언가에 져버리고 말아서,

그 탓일 거다.


 어딘가로 도망치는 중에,

한 눈을 팔던 중에,

이겨버린 이야기다.

박수를 얼마를 받더라도

마음은 져버린 이야기다.


 그래서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는 거다.

괴로움을 즐길 수 있을 리 없다.

아픔에 무감할 리 없다.

행복을 모를 리 없다.

지나는 시간이 아쉽지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승리의 기억이 필요했다.

싸우기로 했고, 싸웠고, 마음이 이기는

그런 기억이 필요했다.


 무의미하다 해도 트로피가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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