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들

by 지구 외계인

아침부터 일이 이상하게 잘 풀렸다.
첫 번째는 문자였다. “카드 연회비 부분 환급이 발생했습니다.” 오래전에 잊어버린 금액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금액은 생각보다 컸다. 두 번째는 메일이었다. “지난달 응모하신 짧은 글, 가작으로 선정. 원고료와 상품권 지급.” 세 번째는 전화였다. “보증금 정산 중 착오가 있어요. 부족분 오늘 이체할게요.” 세 번의 반짝임이 연달아 눈앞에서 터졌다.

휴대폰 화면이 번쩍일 때마다 심장이 살짝 위로 떠올랐다. 통장 잔액이 한 칸씩 올라가는 소리를 상상했다. 나는 숨을 골랐다. “망설이지 않는다.” 아침 연습처럼 앞에 섰다. 그런데 기분이 들뜨니 걸음이 약간 엇박자가 났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가 바뀌는 것을 두 번이나 놓칠 뻔했고, 사람들에게 괜히 “먼저 가세요”를 반복했다. 앞서서 길을 열되 빨리 비켜주는 연습이 오늘은 잘 안 됐다.

점심 무렵, 주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어제 카페에서 만났던 그 사람.
– 오늘도 저녁 괜찮죠? 어제 얘기 이어서.
– 네. 오늘은 제가 먼저 갈게요. 7시, 같은 자리.

보내고 나서 나는 은행을 들렀다. 환급과 정산을 확인하는 사이에, 텔레비전 광고 음향이 크게 울리고, 번호표가 빨리 돌아갔다. 창구 직원이 미소를 보냈다. “오늘은 운이 좋으시네요.” 말끝에 느낌표가 하나 붙은 듯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귓속에 오래 남았다.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번쩍였다. 나는 심장 쪽 주머니의 동전을 만졌다. 여전히 미지근했다. “오늘은 내 차례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는다.” 나는 그 문장을 한 번 더 눌러 담았다. 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가작 수상자 모임, 오늘 7시. 오실 수 있나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오늘 7시. 같은 시간이었다. 같은 자리도 아니고, 다른 쪽 강변.

나는 답장을 쓰지 못하고 잠시 서 있었다. 두 개의 7시가 양손에 들린 듯했다. 왼손엔 오래 기다린 대화, 오른손엔 갑자기 열린 자리. 왼손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오른손은 크게 손짓했다.

나는 주머니의 돌판을 만졌다. ‘먼저 부름’. 누굴 먼저 부를 것인가. 입술이 말랐다. 그때 또 다른 전화가 왔다. 보증금 정산이 예상보다 더 많이 잡혀서, 오늘 안에 오라는 말.

나는 빨리 걸었다. 발이 스스로 속도를 올렸다. 전에는 줄 끝에 서는 법만 알았는데, 오늘은 앞으로 나가야 할 일들이 잇달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앞에서 낮게.” 목소리는 낮췄지만, 걸음은 빨라졌다.

오후가 기울고, 6시 58분. 나는 정산서를 손에 쥐고 있었다. 창구에서 나오는 길, 행사장 안내 메시지가 다시 떴다. “자리 부족, 먼저 오시는 분부터 입장.” 나는 종을 아주 작게 울렸다. 내 귀에만 들리게. 그리고 손가락이 스스로 움직였다.
– 죄송해요. 오늘은 급한 일이 생겨서… 내일 저녁 괜찮을까요?

보내고 나서야, 내가 누구에게 보냈는지 확인했다. 그는 곧장 답장을 보냈다.
– 괜찮아요. 내일 봐요.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그런데 몸은 이미 행사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늘은 내 차례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에게 변명처럼 반복했다. “오늘은…” 말끝이 길어졌다.

행사장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사회자가 말했다. “가작이지만, 오늘의 주인공들입니다.” 박수가 났다. 이름이 불렸고, 내 이름도 불렸다. 나는 단상으로 올라갔다. 앞자리에 서서 상장을 받았다. 플래시가 터졌다. 짧은 인터뷰가 이어졌다. “수상 소감 한 마디요.”

나는 준비한 문장이 없었다. 점 하나를 떠올렸다.
“저… 먼저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수 소리가 다시 났다. 눈앞이 조금 흐려졌다. ‘먼저 부름’이라는 돌판의 글자가 마음 안쪽에서 빛났다. 그 빛이 너무 강해서였을까. 인터뷰가 끝나고 내려오는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그의 이름이 떴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 어디서든 받을 수 있는 전화였는데, 이상하게 손이 느리게 움직였다. 사회자가 다시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설명하고, 사람들은 앞으로 쏠렸다. 소음 속에서 전화가 끊겼다. 메시지가 왔다.
– 괜찮아요? 한 번 더 전화해 볼게요.

나는 그때서야 빈자리를 봤다. 강변 벤치의 7시. 어제 약속한 자리. “오늘은 제가 먼저 갈게요.”라고 적었던 문장. 그 자리의 공기가 비어 있었다. 급히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몇 번 울리다가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

행사장은 환하게 밝았고, 강변은 이제 어두워졌을 것이다. 나는 상장 봉투를 가방에 밀어 넣고,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나왔다. 문이 닫히며 박수 소리가 한 겹 줄었다. 골목에 나오자 바람이 세게 불었다. 휴대폰을 다시 들여다보니, 메시지가 하나 더 와 있었다.
– 오늘은 그냥 걸었어요. 괜찮아요. 내일 보죠.

괜찮다는 말이 가장 괜찮지 않을 때의 톤이었다. 나는 가게로 향했다. 행운 수선소의 간판이 저녁빛 속에서 조용히 깜박였다. 문을 밀자 종이 울렸다. 주인장은 바늘을 들고 있었고,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바늘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어떤 행운이 들어왔나요?”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짧은 시간에 들어온 것들을 세었다.

“환급, 정산, 상장… 그리고 박수.”

“무겁네요.” 그는 물 한 잔을 내밀었다. “그럼 어떤 약속이 어긋났죠?”

나는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가 따뜻해졌다.

“오늘 7시. 제가 먼저 가겠다고 했던 자리. 못 갔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그치지 않았다. 나는 말을 더 이어갔다.

“전화도 바로 못 받았고요. 문자로 미루자고 한 뒤에, 바로 무대로 올라갔어요. 박수와 사진과… 네, 그런 것들 때문에.”

주인장이 조용히 칠판을 꺼냈다. 오늘은 가격표 대신, 한 줄이 적혀 있었다.

행운은 빈자리를 만들고, 사람은 그 빈자리를 채웁니다.

나는 그 문장을 소리 내 읽었다. 입안에서 문장이 서늘했다.

“빈자리를… 만들어요?”

“네. 행운은 보통 손에 무언가를 쥐게 하죠. 그러면 다른 손에 있던 것을 놓칩니다. 시간, 약속, 침묵, 순서. 행운이 만든 빈자리들은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닙니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채우느냐죠.”

“오늘은… 제가 비웠고, 그 사람이 채웠네요. ‘그냥 걸었다’고 했으니까.”

“맞아요. 당신이 만들지 않은 산책이 그의 저녁을 채웠습니다. 이제 할 일은 간단해요. 그 빈자리에 어울리는 모양으로, 당신이 다시 채우는 것.”

나는 컵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채우죠? 사과 문자? 선물? 아니면…”

“의식을 합시다.” 그는 서랍에서 얇은 바늘과 실, 그리고 작은 나무틀을 꺼냈다. 틀 중앙에는 천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고, 원 모양의 빈 공간이 수놓여 있었다.

“이건 ‘빈자리 봉합’틀입니다. 오늘 비운 자리를 떠올리며, 실로 한 번만 감쌉니다. 단단히 묶지 마세요. 숨이 통하게 느슨하게. 그리고 내일, 그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오늘 묶은 매듭을 풀어요. 풀면서 말을 하세요. ‘어제 비운 자리를 오늘 채웁니다’.”

“그 사람이 안 나오면요?”

“그래도 매듭을 풀면 됩니다. 어제 만든 빈자리는 당신 몫이기도 하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장이 실의 끝을 내 손에 걸어 주었다. 실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보이지 않는 무게가 손가락을 천천히 당겼다. 나는 나무틀의 빈 원을 따라 실을 한 바퀴 감았다. 매듭을 짓기 전, 주인장이 말했다.

“이유를 덧붙이세요.”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박수와 플래시가 멀어지고, 강변의 벤치가 가까워졌다.

“어제 먼저 불러 준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요. 나를 먼저 부른 자리에서, 나도 먼저 그를 부르려고요.”

나는 매듭을 느슨하게 묶었다. 실이 작게 숨을 쉬었다. 주인장이 조용히 손뼉을 한 번 쳤다.

“좋습니다. 오늘의 결제는 그 문장으로.”

나는 가방 속 돌판의 위치를 앞주머니로 옮겼다. ‘먼저 부름’이 손등에 가까워졌다. 주인장이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일 7시, 강변 벤치
매듭을 풀며 한 번만 말하기
“어제 비운 자리를 오늘 채웁니다.”

“그런데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행사장에서 제 이름이 먼저 불렸어요. 기뻤어요. 그 기쁨이… 틀린 건 아니죠?”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기쁨이 만든 빈자리를 볼 수 있느냐가 오늘의 숙제였죠.”

“그 빈자리를… 내가 만든 거니까, 내가 채운다.”

“네. 그리고 기억하세요.” 그는 아까의 문장을 다시 가리켰다. “행운은 빈자리를 만듭니다. 사람은 그 빈자리를 채웁니다. 누구의 빈자리인지 보고, 어떤 모양으로 채울지 고르는 것. 그게 우리가 하는 수선입니다.”

나는 봉투와 틀을 가방에 넣었다. 문을 나서며 종이 울렸다.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골목 끝에서 강변 쪽 어둠이 불러들였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에게서였다.
– 사진 봤어요. 축하해요. 내일 강변에서 봬요.

나는 짧게 답했다.
– 고마워요. 내일은 내가 먼저 부를게요.

집으로 가는 길, 주머니 속 동전이 다시 굴렀다.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사라진 자리의 모양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빈 원은 생각보다 선명했다. 나는 내일 풀 매듭의 감촉을 미리 연습했다. 실은 단단하게 묶일수록 숨이 막힌다. 오늘의 매듭은 숨을 통과시키는 매듭. 나는 아주 천천히, 마음을 느슨하게 묶었다.

불을 끄고 누웠다. 베개 옆의 돌판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먼저 부름.’
“내일 7시, 내가 먼저 부른다.”
내가 내게 말했다. 그 말이 방 안에 천천히 번졌다. 오늘은 반짝임이 많았고, 사라짐도 많았다. 하지만 빈자리를 본 눈이 생겼다. 그 눈으로 내일의 자리로 걸어갈 수 있다면, 오늘의 행운은 비싸지 않다. 내가 값을 치를 수 있을 만큼의 가격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값을 잘 치른 행운은 오래 남지 않아도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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