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부로 이직을 했다. 사실 이직이라기 보다는 '직무 변경'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2020년부터 시작한 '퍼포먼스 마케터'라는 직무에서, 회사가 서비스하는 3가지 마케팅 테크놀로지 툴(이하 마테크 툴)들의 전문가가 되어 고객들의 마테크 툴 사용을 돕는 CSM(Customer Success Manager)이 되었다.
업계에서 손꼽히게 잘 나가는 디지털 대행사를 첫 1년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다녔고 이후 1년은 상사의 심한 정치 및 부조리, 그리고 스트레스를 피해 타 부서로 이동하여서 훨씬 나은 워라밸과 더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의 마음속 어느 곳인가에서 계속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던 목소리에 불현듯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 일하면서 내가 성장한다는 생각이 안 들어
- 이렇게 지금처럼 경력을 쌓으면, 나는 다른 회사에서 찾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5~6개월만 버텼으면 받을 수 있었던 내일채움공제도 포기하고, '3년'을 채워야 경력으로 인정된다는 불문율도 어기면서 강행한 이직이었다. 그만큼 내 인생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했던 것 같다.
하지만 퇴사 의사를 밝히는 데에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고, 회사를 옮기고 4개월 차가 된 지금도 하나도 후회하지 않는다. 새로운 회사에 온 이후로는 내가 몰랐던 지식들을 왕창 배우면서 성장을 할 수 있었고, 아직도 모르는 내용 투성이어서 더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또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가진 향상심에 감탄할 때도 있고,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이렇게 세상에 많다는 것에도 놀란다. (이전 회사 동료들이 바보라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현 회사가 전체적으로 더 스마트한 조직임에는 틀림없다) 안 그래도 전과니 뭐니, 인턴이니 뭐니 하면서 사회생활 시작을 남들보다 늦게 하였는데 직무까지 변경하여서 더 정신이 없는 것은 맞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아직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경력 이후에 어떻게 나의 커리어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얼마나 오래 CSM으로서 일할 것인지 혹은 마케팅 직무로 내 커리어를 이어나갈 것인지 않을 것인지, 20대 때 했어야 하는 고민인 것 같은 내용을 아직도 매일같이 고통스럽게 사색하고 있노라면 문득 개발자들이 너무 부럽다.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사실 이것도 있지만) 적어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정해져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코딩'을 하고 '서비스를 개선시킨다'의 관점에서는 큰 틀에서 인생의 방향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아서 부럽다.
중학교 때는 뭣도 모르고 엄마가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고, 고등학교 - 대학교 때는 우연히 본 아이폰 광고가 계기가 되어 광고쟁이가 너무 하고 싶었다. 제일기획, 이노션에 정말 가고 싶었지만 내 크리에이티브 실력이 모자라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우연히 대학교 학회 동기의 영향으로 데이터로 광고를 운영하는 퍼포먼스 마케터 직무에 대해서 알게 되어서 이전 직장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지금 현재 시점에서는, 나만의 사업이나 가게를 가져서 장사를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심까지 있어서 더 머릿속이 복잡한 것 같다.
주저리주저리 길게 썼지만 결국 'So What?'이 중요하니까, 현재 시점에서 한 가지 확실한 목표가 있다면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배우고 이 회사와 직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내용들을 정말 소중하게 여기면서 성장해 나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이후에 어떤 스텝을 밟아나가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구한테는 당연하게 인지하고 있었겠지만, 내가 최근 들어서 깨달은 점은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성공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내가 전문가로서 밟아나가는 필드에서 이름 있는 실력자도 되고 싶다. 한번 두고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