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끝난 이후의 이야기
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소설이었고, 이 책은 몇 년 전에 우리나라의 이미예 작가님이라는 분이 쓴 책이다. 꿈이라는 소재를 참신하게 풀어내어서 굉장한 호평을 받았고, 후속 편까지 이듬해에 바로 출시될 정도의 엄청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실제로 읽어보니 재미있었다. 소재 자체가 굉장히 참신한 데다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카테고리의 에피소드를 첨가하여서 술술 잘 읽혔다. 다만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는데,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데 비해 각각 해당 인물들의 비중이 너무 작은 경우가 있어서 굳이 이렇게 정신없이 많은 인물이 등장해야 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또한 소설의 전반부와 후반부에서는 에피소드의 속도감이라던지 흥미가 굉장히 많은 상태로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지만, 중간의 상당한 부분은 다소 루즈한 전개가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평은 소설을 너무 오랜만에 읽어서 감을 못 잡은 독자의 입장에서 느낀 사소한 감정일 뿐이고, 전체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으면서 굉장히 이상한 경험을 한 지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책이 다 끝나고 나온 작가소개 부분이다.
사실 별 내용은 없다. 이미예 작가님이라는 분이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시고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책이 첫 소설이시며, 잠을 대하는 태도와 꿈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이 아주 간략하게 나와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나는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그 이유는 작가가 이 글을 쓴 의도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풀어서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거의 300쪽 가까이 되는 이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마지막 장이 되어서야 잠깐동안 실제 현실로 전환되어서 이미예 작가라는 사람이 '잠을 자면 기억에 남는 꿈을 자주 꾸기 때문에' 소설의 소재를 찾아낼 수 있었고 '좋아하는 것은 8시간 푹 자고 일하기'이며 '싫어하는 것은 잠도 못 자고 밤새워 일하기'이기 때문에 진지함을 가지고 잠과 꿈이라는 소재를 끌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서 부산에서 태어나서 대학까지 부산에서 나오셨기 때문에 사투리를 쓰시는 경상도 토박이일 것이며, 원래 공학도로써 일하다가 이 소설을 계기로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이야기 내내 본인이 창조해 낸 등장인물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소재를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작가는 어떻게 보면 메인 스토리를 읽어주는 이야기꾼, 조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비로소 최종장이 끝나고 나서야, 실제 현실세계로 전환되어서 짧은 1~2페이지의 분량으로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서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완성되는 지점은 이 마지막 페이지의 자기소개 부분이었다.
꼭 현실세계와 연결되지 않더라도 분량 및 중요도 문제로 인하여서 본편의 이야기에서 다루지 않았던 끝, 즉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루는 경우도 있다. 네이버 웹툰 중에서 '더 복서'라는 작품이 있었고, 해당 작품은 작가의 종교적인 사상을 굉장한 그림체와 스토리로 거부감 없이 작품에 진솔하게 담아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제일 마지막 편인 '더 복서'의 에필로그에서는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다가 죽는지에 대해서, 복싱만화와 굉장히 잘 어울리게 '링에서 내려왔는지'로 표현하며, 담담하게 전달해 준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그리고 시합은 언젠가 끝을 맞이한다.
류백산은 청소년 복지시설에서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았으며 71세의 나이로 자신의 링에서 내려왔다.
인재는 복싱 체육관을 열고 수많은 복서들을 키워내는 삶을 살았으며 83세의 나이로 자신의 링에서 내려왔다.
(중략)
유는 사람의 삶을 살았으며 84세의 나이로 자신의 링에서 내려왔다.
굉장히 치열하고 숨 막히게 전개되었던 스토리가 끝난 뒷부분에서, 각 등장인물들이 어떠한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전달해 주는 것은 나에게 '더 복서'에 대해 더 몰입하고 큰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던 부분이었다. 스토리를 작가의 의도대로 풀어나가면서 본편을 잘 마무리 짓는 것 또한 그것대로 독자들에게 여운을 주는 훌륭한 방식일 것이다. 어쩌면 선호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느껴지기로는 열린 결말로서 마무리되는 것보다는 작가가 한마디를 더 해주는 방식으로서 전체적인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느껴진다.
에필로그는 결국 스토리를 보다 탄탄하게,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장치로서 작용한다. 글이나 웹툰, 혹은 콘텐츠를 잘 만드는 사람일수록 본편뿐만 아니라 뒷 이야기에서 어떠한 내용을 전달하고 끝까지 독자들로 하여금 몰입하게 할 수 있는지를 설계할 수 있는 것 같다. 명품과 가품의 차이는 디테일이라고 했던가. 끝까지 세세하게 디테일까지 잘 챙기는 설계가 녹아들어 있는 스토리가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다. 수능 언어 지문에 수도 없이 나오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은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큰 역량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