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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imoriho Feb 19. 2023

아버지의 화분

화분을 옮길 때마다 그를 미워했다.


 




우리 집에는 많은 식물이 있다. 아버지가 식물을 좋아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쉬는 날이면  식물들의 자리배치를 조금씩 바꿔놓곤 한다. 그래서 가끔씩   앞에도 식물들이 놓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게 불만이었다.   앞엔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놈의 크고 작은 화분들 때문에 방에 들어가기가 불편하다며 온갖 불평을 늘어놓으며 그것을 자주 다른 곳으로 치워버렸다. 일부러 들리도록 투덜댈 때도 있었다.




 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때마다 아버지를 미워했다. 나는 줄곧 아버지를 미워했으니까. 화분을 옮기는 순간에도 그러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말없이 화분을   앞에 갖다 놓을 뿐이었다.




 현관 천장에는 위로 자라는 덩굴이 길게 뻗어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버지는  덩굴과 기다란 크리스마스 전구를 함께 달아 빛나게 했다. 매일  현관과 거실이 반짝 거리는 것을   있었다.




 나는 넓지도 않은 집에 아버지는  이리 크고 작은 식물들을 가득 들이고 집착하는 것일까 했지만 아버지의 방은 수많은 물건들과 기록으로 가득 차 있으니 그저 수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여기고 입을 닫았다.



 그러던 어느 , 우리 집 고양이가 실수로 거실 화분의 줄기를 꺾었다. 곧게 뻗어있던 두 개의 줄기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놀란 나는 화분 위에 있던 고양이를 얼른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화분은 거실에 있는 것들  크기가 가장 크고, 아버지가 "그건 내가 아끼는 화분이니까 망가뜨리면  돼."라고 고양이에게 항상 주의를 주던 것이었다. 내가 방에 있던 아버지에게 가서 줄기가 꺾였다, 고 말하자 아버지는 다급하게 거실로 나왔다. 나는 고양이가 아버지에게 혼날 것을 예상했고, 재빠르게 뛰어 도망가는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양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화분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곧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운다.





 아버지의 통곡은  전체를 울렸다. 나는 화분의 줄기가 꺾였을 때보다  배는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버지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것은, 내가 아는 슬픔이다. 마음 어디 깊숙한 곳에 잠재하던 오랜 슬픔이다. 저것은, 단지 식물의 줄기가 꺾여 흐르는 눈물이 아니다. 저것은,  줄기는, 단순히 식물이 아니라 아버지 자신 안의 무언가다. 지금 아버지 안의  무언가가 깨진 것이고, 이것은 아버지에게 있어서 그의 세상이 무너진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나는 눈물은 온갖 사랑과 시간과 삶과 후회에 뒤섞여 있다. 아버지는  수많은 식물에 자기 자신을 투영한 것이다. 아버지라면, 그럴 텐데... 그런데 지금  줄기가 꺾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 그것 가지고 울고 그래."라고 말을 뱉었다. 이놈의 . 항상 이런 식이지. 말을 뱉자마자 후회했다.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 없이 울기만 했다.  손으로는 꺾인 줄기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줄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버지는 식물이 불쌍해서 우는 것이 아니다. 힘없이 꺾인 줄기가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우는 것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아버지가 안방으로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안방문이 닫히는 소리는 어느 때보다 오랫동안 거실에 머물렀다. 그리고 여운이 사라질 때쯤에 방문 너머로 아버지의 우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는 한참 동안 거실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곳에는 아버지의 슬픔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영원히 고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곳으로 나가 나의 못된 발자국으로 그것을 지운다면, 과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길  있을까? 아니, 후의 죄책감은 상상조차   없다. 내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그건 여간 무례한 짓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거실로 나갔을 때는 어중간하게 햇빛이 들어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오후 네시였다. 하지만 집의 그림자가 나만큼이나 드리워서 어쩐지 밤인 듯 깜깜했다. 고양이는 어디론가 깊이 사라졌고, 강아지는  방에서 꼼짝 않고 나를 따라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출근을 하고 없었다. 결국 집에 남은 것은  혼자였다. 집이 죽은 듯이 조용했다.



 아버지의 화분은 거실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화분을 보았다. 꺾였던 줄기가 곧게  있었다. 아버지가 나무젓가락으로 지지대를 만들어 줄기를 바르게 세워둔 것이다.




 ,  나무젓가락과 줄기를 보자마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후회가 밀려왔다. 이토록 작은 것까지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미움을  것인지. 아버지는 해가 좋은 날이면  무거운 화분을 힘겹게 들고나가  밖에 내놓고, 화분이 해를 하루종일   있도록 했다. 물을 듬뿍 주고, 해가 지면 다시 집안으로 들여놓았다. 가끔씩 위치를 바꾸어 놓고, 또다시 물을 주고,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다.




 아버지에게 식물은 자기 자신이자 지난 모든 시간들을 비롯한 삶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희망이었다. 아버지는 분명  많은 식물들을 오래도록 보살피며 자신의 지난 후회들을 보듬었을 것이다. 수백 번 용서를 구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과도 같은  작은 것들을 사랑했을 뿐이고, 나를 사랑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아버지의 작은 희망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오랫동안 아버지를 미워했다. 그럼 그동안에 내가 아버지를 무너지게  것일까.




 물론  안에도 많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날은 내가 그동안에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생각하는  외엔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미워했던 그럴듯한 이유들이 전부 하찮게 느껴졌다.

이제, 남은 후회는 모두 내 몫이었다.




 그날 밤에 퇴근하고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았다. 우리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나는 아버지에게 얼굴을 비추고 나서 곧바로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방문에 기대  꺼진 방안을 바라보았다. 까만  안에서 방금  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히 떠오른다.




 어릴 , 친구들에게 우리 아버지는 키가 크다고 자랑을 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렇게 작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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