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얼굴에 그렇지 못한 차
봉준호 감독을 포함한 많은 영화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제7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담았습니다.
<드라이브마이카>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 니시지마 히데토스, 미우라 토코, 오카다 마사키, 키리시마 레이카, 박유림, 진대연
원작 : 무라카미 하루키
개봉 : 2021년 12월 23일
1. 줄거리
누가 봐도 아름다운 부부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와 오토(키리시마 레이카). 우연히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가후쿠는 이유를 묻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2년 후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되어 작품의 연출을 하게 된 가후쿠.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미우라 토코)를 만나게 된다. 말없이 묵묵히 가후쿠의 차를 운전하는 미사키와 오래된 습관인 아내가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며 대사를 연습하는 가후쿠. 조용한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가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한 편, 오토의 외도 대상인 다카츠키(오카다 마사키)를 오디션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데..
2. 러닝 타임
영화의 러닝타임은 179분이다.
3시간에서 무려 1분이나 모자란 아주 긴 시간이다.
세 시간을 영화관 의자에 앉아 있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오프닝 시간만 약 50분이다.
오프닝이 영화의 전반적인 배경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간결한 방식으로 생략했을 수도 있지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가후쿠가 느낀 고통과 갈등을 관객들과 함께 온전히 들여다보기 위함이었을 거다.
3. 대본 리딩
영화에는 여러 대본 리딩 장면이 나온다.
각 배우들은 감정을 배제한 채 로봇처럼 대사를 리딩하고 자신의 대사가 끝나면 책상을 한 번 두드린다.
이런 방식은 배우들이 본인의 대사에 좀 더 집중하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게 한다.
영화에서 강조하는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깊게 들여다 보고 전달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배우들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 수어를 통해 연기를 하고 대화를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방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엔딩 장면에서는 심지어 수어를 통해 관객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한다.
관객들은 음성언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받는 것보다 수어를 통해 전달받을 때 그 사람에게 더 집중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충실할 때 개인은 타자와의 관계 맺음에도 원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4. 자동차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드라이브마이카>에서 자동차는 중요한 소재이다.
자동차라는 오브젝트는 폐쇄성과 역동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특성이 있다.
차 안에서의 가후쿠와 오토의 대화는 대각선에서 가로선으로 이동되며 가까워진다.
뒷좌석으로 가기 위해선 의자를 접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단절감이 생긴다.
가후쿠가 오토의 뒷좌석에서 옆 좌석으로 자리를 옮기며 둘은 더욱 유대감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동시에 자동차는 앞으로 나아간다.
돌아가는 테이프처럼 자동차의 바퀴 역시 끊임없이 돌아간다.
삶의 연속성 속에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5. 자신에게 집중하라
라고 말한 사람은 다카츠키였다.
다카츠키가 들었던 오토의 이야기에서 여고생은 도둑을 죽였다.
그것은 이미 일어나 버렸고 되돌릴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가후쿠가 자신이 오토를 죽였다며 고통스러워하고 아파하지만, 그것은 이미 일어났다.
기술이 발전한 현대시대(cf. CCTV)에서 개인의 행동은 기록에 모두 남아 일어난 것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는 가후쿠가 카메라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극도 마찬가지이다.
연극은 영상과 다르게 이미 대사를 하면 되돌릴 수 없다.
우리가 뱉은 말과 저지른 행동은 이미 일어났고 삶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과거를 마주했을 때 우리가 떳떳하기 위해선 현재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에 대하여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이미 일어났고 시간은 테이프처럼, 고속도로 위 자동차처럼 되감을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