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머무는 동안, 내가 깨달은 것들
한국 사회에는 마치 정해진 길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입시와 취업과 같은 주제와 관련된 질문을 들으면서 자라며, 그것을 마치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정답을 따른다 할지라도,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길을 반드시 가야 한다는 식의 사고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그물에 불과하며, 그 길을 벗어나면 언제나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생의 정답을 논하게 되는 순간, 그 정답에 속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걷는 것처럼 막막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타지에서 머무는 동안, 나의 가치를 외부에 증명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나의 머릿속의 생각을 가두는 족쇄를 벗어던지니, 이전에 묻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나의 의식과 관심은 타인으로부터 듣거나,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의 범위를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인간은 질문을 통해서 자신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인간은 그저 자신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매고 있는 동물에 불과했다. 그 말은 곧 내가 던지는 질문을 바꾸면, 나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나의 말을 믿기 힘들다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형태를 찬찬히 살펴보라. 아마 자신이 어릴 적부터 주위에서 들어오거나, 스스로 물었던 질문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예전에 당신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 지금 당신의 모습을 탄생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개 한 인간의 활동범위는 자신이 묻는 질문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한 인간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의 핵심에도 역시 ‘질문’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질문을 감히 ‘문화의 씨앗’이라고 말하고 싶다. 문화에 따라 묻는 질문이 다르고, 질문이 달라지면 한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라지며,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라지면 삶의 형태가 달라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즉, 특정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질문'이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시킨다는 말이다.
한국의 문화를 탄생시킨 주요한 질문으로는 ‘취업’ ‘입시’ ‘결혼’ ‘연애’ ‘인간관계’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화의 일부이지 결코 인생의 정답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정답이라고 여겨지는 삶의 형태가 세상에 존재하는 수천수만 가지의 삶의 형태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다른 문화에서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비상식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한국에서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식들이, 인간의 삶을 진정으로 나아지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습관이나 이전의 선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결국, 자신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음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스스로 만족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어떠한 선택을 내릴 것인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을 바꾸어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