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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수 Dec 06. 2019

행복은 객관화될 수 없다

우리는 행복해지기보다,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한다



2017년 여름, 런던에 지내는 동안 시간이 많았던 나로서는 그저 발길이 닫는 대로 온 도시를 걸어 다녔다. 그러다 하루는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 근처에 있는 우체부의 공원(Postman’s Park)을 방문했다. 영화 ‘『클로저』’에서 주인공인 주드 로가 서있던 자리에 서서 그가 바라보았던 벽화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곳에서 나는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때 나의 주위에 있던 누구도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이 세상에서 오로지 나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장소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데, 지나가던 런던 시민들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저 평범하고 작은 공원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순간,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누가 보는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기분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나 자신도 기분에 따라 같은 사물을 볼 때 드는 생각이 다른데, 다른 사람이 나와 똑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은 몸을 통해 느끼고 배운 것을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나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서, 내가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진부한 교훈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누군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하다고 해서, 내가 그 일을 할 때도 행복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다른 누구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도, 그것을 이해해달라고 요구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각자는 그저 자신만의 방식대로 즐기는 것들을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 행복은 결코 객관화될 수 없었다. 자기 자신 이외에 타인의 행불행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오류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한 모든 추측은 불확실한 전제일 뿐이며, 자신이 직접 다른 사람이 되어보지 않는 한,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개인마다 고통, 기쁨, 슬픔, 감동을 인식하는 크기와 부분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즉, 누구는 햇빛이 쨍쨍한 맑은 날씨를 좋아하지만, 누구는 구름이 우중충한 비오기 직전의 흐린 날씨에서 오히려 상쾌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는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마치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회사 동료, 친구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모두 비교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SNS에 올린다. 아마 자신의 일상은 늘 그렇지 못할지라도 남들에게만큼은 행복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SNS에 사진을 올리는 행위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점차 사람들이 “다른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통해서 자신의 행복과 불행을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만약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안 좋게 바라본다면, 스스로도 정말 자신이 불행하다고 믿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는데, 자신만 왜 이럴까 자책하면서 우울감에 쉽게 빠진다.


많은 사람들이 남들에게 자신의 행복한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너무나 자세히 볼 수 있고, 다른 누군가도 자신의 일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프랑스의 작가 라 로슈푸코는 저서 ‘『잠언과 성찰』’에서 그러한 현대인의 모습을 묘사한 바가 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보다,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고, 그것이 좋아 보이는지 남에게 묻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행복한지 아닌지는 오로지 자신만이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니, 심지어 자신도 자신이 행복한지 모를 때가 많다. 나 스스로도 행복한지 모르면서, 타인이 행복한지는 도대체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러니 타인을 기준으로 기준으로 자신의 행복을 가늠하는 것은, 오로지 그들의 꾸며진 겉모습만 보고 스스로를 불행의 나락으로 빠뜨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차 버리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지금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고 있는 당신을 누군가는 부러워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이 부러워하는 그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행복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실제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로 각자의 삶을 채워 나가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타인의 모습만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행위를 멈추고, 자신만의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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