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으로 13_말레이시아 1
♡ 한 달 살기 시작
역시 허리도 엉덩이도 안 아픈 곳이 없다.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것은 아무리 여러 번 겪어도 적응이 안 된다.
마닐라에 도착해서 환승시간까지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져서 화장실도 다녀오고 몸도 좀 풀어 보았지만 다시 이어지는 싱가포르까지 4시간의 비행은 마냥 즐겁기만 한 경험은 아니었다.
말레이시아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 조호르바루에 가기 위해서는 조호르바루와 다리 하나로 연결된 섬나라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을 이용해야 한다. 창이공항에서 조호르바루에 가기 위해서는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여를 달려서 싱가포르 북쪽에 위치한 우드랜드 출국장에 도착해서 출국심사를 마치고 조호르바루로 가는 버스를 다시 타고 다리 하나만 건너면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다.
조호르바루에 도착해서 입국장을 통과하면 드디어 말레이시아에 들어서게 된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도 초행길인데다가 날은 어둡고 짐이 많아서 다들 많이 지쳐있다. 다행히 호스트가 셀프 체크인 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줘서 숙소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아 다행이다.
숙소에 들어오니 저녁 8시.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까지 무려 6시간이나 결렸다. 그동안의 이사중에는 가장 힘든 이사였다.
조호르바루에서 한 달 살기를 결정한 우리는 이 숙소에 있는 기본 생필품들을 확인하고 새로 구입해야 할 물품들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았다.
우선 급하게 필요한건 어댑터(일명 돼지코)다. 우리가 가지고 다니던 어댑터와 스위스에서 구입했던 어댑터는 이곳의 플러그와 맞지를 않아서 당장 핸드폰도 충전할 수가 없다. 그리고 숙소에 냄비가 하나밖에 없어서 한 달 동안 사용할 저렴한 냄비도 하나 필요했다. 물론 세탁기용 세제 같은 기타 등등의 물건들도 당연히 필요했다.
다행히 숙소주변에 대형 마트가 있어서 필요한 생필품들을 구입하러 가보았는데, 제일 중요한 어댑터가 없다. 다른 마트를 검색해서 찾아가 보아도 그곳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원하는 어댑터는 어디에 있을까?
한참을 검색한 끝에 택시를 타고 조호르바루에서 제일 큰 마트로 갔다. 다행히 이곳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전부 구비되어 있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를 탔는데 마트를 찾아 갈 때와는 택시비가 다르다. 물어보니 일방통행을 피해서 길을 돌아 가야해서 비싸다는데 내 생각에는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일부러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계 어느 곳이나 외지인에 대한 바가지는 어쩔 수 없나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들 그랩이라는 어플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추천을 했었나 보다 싶어서 우리도 다음부터는 그랩을 이용하기로 하고 억울한 택시비를 지불했다.
우리가 필요했던 어댑터, 냄비셋트, 후라이팬 그리고 기타 먹거리 등을 사서 숙소에 돌아온 우리는 가장 먼저 한 달 동안 먹을 김치를 담으면서 말레이시아에서의 한 달 살기 준비했다.
♡ 푸념 4
아내가 잠이 안 온다며 새벽까지 깨어있다. 덕분에 나도 이왕에 말레이시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기로 했으니, 나중에 말레이시아에서 노후를 보내게 된다면 어떤 방법으로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또, 아이들이 한국 교육체계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비전이 없다고 느껴질 때 아이들을 유학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아봤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부모인 우리들만의 고민이었나 보다. 아이들은 말로만 유학가면 좋겠다고, 유학가고 싶다고 하고서는 그 방법이나 정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도 없는 것 같다.
교육을 잘 못 시켰을까? 자기의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었는데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로 태어나서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까봐 너무 안쓰럽다는 이유로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미리 미리 챙겨주고 싶었던 탓에 아이들이 원하기 전에 우리가 알아서 해줬던 게 잘못이었나 싶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자고 이야기 했더니 아내는 자신이 어려서 너무 힘들게 살았다며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랬단다.
이곳 조호르바루에서 한 달은 정말 아이들이 스스로 뭘 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한 달로 투자하고 싶다. 마음 급한 우리가 나서서 뭘 해주기보다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방법은 무엇이 있으며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지 생각 좀 해봐야겠다.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새벽이다.
♡ 푸념 5
벌써 한 달 살기 5일째다. 과연 이번 한 달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핸드폰만 한다는 게 지금은 별로 보기 좋지 않지만 잔소리로 그걸 막는 것 보다는 자신이 느끼고 자기의 시간을 관리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엔 아직 어린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느꼈을 때 더 효과적임을 알기에 이번 한 달을 투자해보고자 했다.
이번 여행이 물론 아내에게는 힐링트립, 아이들에게는 비전트립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도 비전트립인데 그동안 가이드역할을 하느라 내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이번 한 달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은 상태에서 난 뭘 얻을 수 있을까?
저녁식사를 하고 아내가 답답하다며 산책을 가겠다고 한다. 쇼핑도 할 겸. 아이들도 답답했던지 따라간다고 나서는 바람에 결국 나만 혼자서 숙소를 지키게 되었다. 덕분에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선물로 받았다.
몸은 분명히 쉬고 있는데 가슴은 답답하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내년에 한국에 돌아가면 뭘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걸까? 내 꿈은 어떻게 접근해서 실행에 옮겨야 할까? 회사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은퇴 시기는 언제로 해야 할까? 그 후의 삶은?
생각이 많아지니 머리가 아프고 가슴은 더 답답해졌다. 틀이 잡혀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가슴을 더 답답하게 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말레이시아의 밤하늘이 마치 내 심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캄캄하기만 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