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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세계일주 한번 해볼까? 7

여행 준비 6

by 뚱이

너 영어 잘해?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염려되는 부분이 바로 언어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대학교, 대학원까지 무려 12년을 공부 했지만, 이놈의 영어는 무섭다. 말문이 잘 트이질 않는다. 외국인을 만나면 긴장되어 땀이 비가 오듯이 흐르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린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빠가 해요. 저희는 아빠만 믿어요. 아빠 사랑해요. 뭐 이러고만 있다.


‘아! 여행은 온전히 나만의 짐인가?’ 이렇게 한탄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여행을 가기로 했으니 일단 어떻게 하든지 방법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영어학원을 알아봤다. 전투적으로 배울 수 있는 단기속성 생활영어 반은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한 달에 적게는 4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기백만 원까지 한다. 너무 비싸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문화센터에서 가정주부들을 위한 여행영어 수업이 있었다. 3개월에 10만원이다. 이거다 싶어서 냉큼 신청을 하고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3개월이 지나고 내 영어 실력은?

지금 생각해도 우습지만 겨우 중학교 1학년 수준의 단어들을 조합해서 어순도 안 맞는 영어를 떠들어대는 수준이다.


실제로 외국에서 말도 안 되는 영어를 구사하다가 뒤에서 아이들이 “아빠! 그런 말이 아닌 거 같은데요.”라며 눈치를 주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은 원어민 교사와 함께 수업을 해서 그런지 듣는 건 곧잘 알아듣는다. ‘그러면 대화도 좀 하지.’ 싶지만 아이들에게는 낯선 환경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많이 두려운가 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3개월의 영어수업이 나에게 준 것은 자신감과 뻔뻔함이다. ‘아쉬운 쪽에서 알아듣기 위해 노력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현지에서 딱 들어 맞았다.


우리 나이또래의 세대들은 대부분 영어 울렁증이 있다. 그냥 두렵다.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닌 줄은 알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게 되고, 상대방에게 무시당할까봐 더 두렵다. 하지만 실전영어는 전투다. 내가 한마디도 안하고 살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야만 느는 게 영어인가 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제는 떠듬떠듬 할 말은 할 줄 알고 지낸다. 외국인들을 만나도 예전보다는 덜 무섭다.


요즘은 핸드폰 어플도 막강하다. 구글번역기가 우리가족에게는 엄청난 힘이 되었다. 항공권을 예매 할 때도, 숙소를 예약 할 때도 모두 영어로 해야 하기 때문에 복사하고 붙이기를 여러 번 하면서 그 어려운 일들을 다 해냈다. 구글번역기에게 감사한다.


인천공항에서 처음 출발 할 때는 한국 스튜어디스가 항공권 발권을 해주니 걱정이 없었지만, 외국에서 공항을 이용 할 때는 뭐 한 가지를 하려고 해도 영어로 물어봐야하고 영어를 알아들어야 한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세요.”를 무수히 사용하면서 다녔다. 어차피 한 번보고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이라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대화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실력이 늘었다. 아이들도 이제는 “저기 가서 이것 좀 물어보고 와.”라고 하면 웃으면서 물어보고 온다. 화장실도 혼자서 물어물어 곧잘 찾아간다.


터키 괴레메의 카파도키아에서는 호스트의 조카들이 한국 K-Pop을 좋아한다며 우리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서로 번역기를 이용해서 이야기 하더니 금새 친해지고, 호스트의 조카 집에 놀러가서 저녁식사까지 대접받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생각도 못해봤을 상황에 아이들이 적응하는걸 보고 깜짝 놀랐다. 덕분에 아이들이 외국인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산토리니 섬에서 이용할 렌트카 회사에 전화로 예약확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할 말과 그쪽에서 물어볼 말, 거기에 대한 대답 등을 미리 예상해서 대화내용을 종이에 적었다.

처음으로 전화를 하는 순간은 정말 어떻게 대화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화를 끊자 옆에서 같이 긴장하며 듣고 있던 아내와 아이들이 “아빠 최고”라며 박수를 쳐줬다. 최초의 전화영어 통화가 자랑스러웠다.


러시아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몸짓으로 모든 대화를 한 거 같다. 역시 세계 공용어는 바디랭귀지였다.


유럽의 관문 헬싱키에서는 출국 항공권을 예매하지 않아서 입국심사 직원과 실랑이를 벌일 때도 안 되는 영어로 땀을 엄청나게 흘리며 이야기를 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리스차량을 반납 할 때도 반납하는 날이 휴일이어서 미리 전화로 반납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때는 여행을 떠난 지 3개월이 넘은 시기라서 자연스럽게 전화로 예약을 할 수 있었다.


태국에서는 막내가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다가 공항 경찰에게 끌려가는 걸 겨우 붙잡아 상황설명을 하고 풀려난 적도 있었다. 나이가 만 14살밖에 안 되는 여자아이의 여권에 도장이 많이 찍힌 게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의심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하는 우리는 그 상황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었다.


그 외에 식당이나 관광지를 이용 할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고객이고 내가 갑이니까. 내가 아무리 더듬더듬 어순이 안 맞는 말을 해도 다 알아듣고 이해해 준다. 한국에서도 외국인이 한국말로 길을 물어보면 얼마나 신기하고 기특한가. 우리가 외국에 나가도 마찬가지 이다. 자신 있게 입을 열기 바란다. 상대방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마음착한 외국인이다.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언어는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영어가 안 되서 여행을 못 가겠다는 건 핑계다.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라. 영어도 언어라서 하다보면 실력이 늘게 되어있다. 현지에서 전투적으로 배우는 영어를 체험해 보시라. 비싼 영어학원보다 훨씬 좋은 강사들이 세상에 깔려있다. 그것도 무료강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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