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주 Jan 12. 2024

순이 언니

우째도 살아갑니다-2



사람마다 특이 취향이 있다. 외모, 성격, 대화방식 같이 당연한게 아니다. 두 갈래로 갈라지지 않는 단정한 새끼발톱이나, 앞으로만 똥똥-하게 튀어나온 뱃살 같은 취향말이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런 사람이 어디있겠냐 싶겠지만 내 주변엔 한 명 있다. 바로 순이 언니다.


처음 순이 언니를 만난 건 친구인 개미가 당시 가족들과 함께 지내던(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 집이었다. 당시 개미는 친언니를 '낯을 좀 가리는데, 괜찮은' 사람으로 설명했다. 뒤이어 가끔 미친 것 같은데, 그것도 괜찮겠지, 라고 말했다. 방금 '괜찮겠지'는 누구에게 한 말이야? 묻고 싶었지만, 개미의 얼굴이 너무도 대수롭지 않아서 그러려니 했다.


순이 언니와 처음 인사를 한 순간이 생생하다. 언니는 도수 높은 안경에, 흘러내리는 머리를 머리띠로 한껏 고정하고 수면바지를 나풀거리며 거실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나에게 언니는 '네…, 안녕하세요….' 힘없이 답변한 후 발소리도 나지 않게 스르륵 본인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 낯을 가리신다고 했지. 낯 가리는 걸로는 어디서 밀리지 않는 나는 그려려니 했다. 저녁시간 찾아온 불청객을 내쫓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 집 거실에서 개미 어머니와 한바탕 술을 마실 때도 언니는 방을 나서지 않았다.


내 존재가 그녀를 자발적 감금 상태로 만든게 아닐까, 심성이 너무도 여려 아무말도 못하고 답답한 방안에 계신게 아닐까, 그런 생각에 나는 개미를 보채 개미방 동그란 좌식 식탁에서 이차를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거실에서 바지 나풀거리는 소리가 났다. 언니가 나온 것이다. 그런 언니를 향해 어머니가 큰소리로 말했다. "순이가 요리 잘하니까, 애들 안주 좀 해줘라!"

 '괜찮습니다!', '배 부릅니다!' 절규에 가까이 소리질렀지만, 손님을 대접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의지는 확고했고, 언니는 의외로 덤덤히 그 의지를 따랐다.


요리가 만들어지는 약 10분의 시간, 나는 방안에서 불편함에 손을 떨고있었다. 그런 나에게 개미는 왜 유난이냐는 반응이었다. 내가 이상한건가? 저녁시간 불쑥 찾아온 동생 친구 때문에 집에서 푹 쉬기도 불편한데, 갑자기 동생들 먹을 음식까지 만들라고 한다면….


얼마 후 언니는 친히 방 안까지 들어와 갓 만든 감바스를 두고 나갔다. 들어오고 나갈 때까지 언니는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기에 나는 그 뒷모습에 대고 "언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외칠 수 밖에 없었다. 포크를 집는 순간, 무언가 묘했다. 먹는 사람은 나와 개미뿐인데, 왜 포크가 세 개지? 다시 문이 열렸다. 언니가 한손에는 화이트와인이 담긴 와인잔을, 한손에는 책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이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싶었으나,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언니는 우아하게 와인잔을 들고 '짠' 한 후, 읽던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개미는 와- 이거 기가 맥히네, 하며 포크질을 시작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자매의 행동에 그 중간에 있는 나는 벌컥벌컥 술을 먹는 것말곤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슬슬 이 기묘한 분위기에 익숙해질 무렵, 언니가 벌떡 일어났다.


"너희 시끄러워서 못 봐주겠네"


술 먹으면 당연히 시끄럽다, 심지어 언니가 제 발로 찾아온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그저 바지를 나풀거리며 나가는 언니의 뒷모습을 허망히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의 정적을 개미가 채웠다.


"원래 저래, 괜찮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내 눈 앞에서 종이를 찢고 나온 순간이었다.


개미는 언니와 관련된 몇가지 일화를 말해주었다. 학창시절 개미의 학교에 못된 남학생들이 있었다. 한 날은 그들이 에프킬라를 사람에게 뿌리는 하찮고 위험한 짓을 하고 있었는데, 하필 그게 개미의 눈에 들어갔단다. 개미는 하교후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 고자질이라기 보다는 눈에 모기약이 들어가면 병원을 가야하나? 같은 순수한 질문이었단다. 가족은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물었고, 개미는 사건의 경위를 말했다. 개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언니가 벌떡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나왔단다. 그녀의 손에는 에프킬라가 들려있었다. 언니는 개미를 향해 말했단다. "야, 일어나. 그 새끼 잡으러가자"




내가 그 후로 그녀를 만날 일은 없었다. 그녀는 돌연 자취를 하겠다며 서울에 거처를 마련했고, 나는 나대로 일에 치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친구의 언니와 만나는 일이 많을 수도 없다. 언니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그 후로 2-3년이 지난 후, 온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선거 기간, 여의도였다. 언니는 기존 본인이 알고지낸 후보의 캠프에 외주제작자로 있었고, 나는 예전 내가 일했던 사장의 캠프에 있었다. 후보는 달랐지만 '선거 실무진'이라는 역할은 같았고, 쏟아지는 업무량에 밀려 밤을 새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의 동변상련인가, 나는 이따금 언니의 집에서 잠만자고 출근을 했고, 언니는 어떤 의미에서 염치없는 동생 친구를 불편한 기색없이 받아주었다.


그렇게 알게된 언니는 내가 본 적 없는 인간상이었다. 5살 같다가도 제 나이로 보이고, 가끔은 통달한 현자처럼 보인다.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남에게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가여워하지도, 자랑스러워 하지도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질투하지도 않는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고개 숙이지 않고, 많은 것이 있다고 허세부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녀의 주변엔 사람이 모이고, 또 떠났다. 그또한 그녀는 슬퍼하지 않는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그녀 마음한켠에 있는 자기확신과 자기객관화에서 찾았다. 그렇다면 그 자기확신과 자기객관화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거기까지는 아직 모르겠다. 앞서말했듯 그녀는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몇번 물어봤지만 그녀는 답해주지 않았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담배나 피러가자는 말에 몇 번이나 묵살당했다.


마치 모든 것이 물인 것 마냥, 명예건, 돈이건, 사람이건, 흘러오고 흘러간다고 여기는 듯한 태도를 닮고 싶었던 적이 있다. 실제로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의 준비없는 퇴사 결심과 우째도 살아간다는 새로운 좌우명에도 그녀의 태도가 스며들어있다. 그녀의 달관까지 아직 갈길이 멀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욕심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그녀의 강이 있고, 나는 나의 강이 있으니까. 그저 그녀처럼, 가만히 앉아 흘러오고 흘러가는 내 인생의 부유물들을 한 발 멀리서 지켜보고 싶다. 태연하게, 남 일처럼, 저게 뭐야? 시끄러워서 못봐주겠네 하면서.


한때 동생 눈에 에프킬라가 들어가게 한 남학생을 찾아 부산 밤거리를 배회했던 학생은 이제 어느덧 30대 중후반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 전 프리다이빙을 시작했다. 30대 중후반, 남들의 기준으로 늦다면 늦은 시기에 평생 발딛고 살던 땅을 지나 바다로 잠수하고 있다.  


인터넷에 프리다이빙을 찾아보니 호흡이 중요하다고 한다. 원래 숨쉬는 방법으로는 숨을 참을 수 없어, 다른 방식으로 호흡해야 한단다. 그래야 더 오래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언니는 그방법을 익혔을까, 남들과 다른 호흡으로 숨쉬고 있을까. 지금쯤 또 어느 바다에 들어가 있을까. 그 다음은 또 어떤 곳으로 갈까. 다음은 또 어떤 일을 할까.


며칠 전 언니가 고양시에 왔다. 밤늦게까지 술을 먹으며 얼마 후 해외 바다에 다이빙을 하러가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만두가 먹고싶다며 안방에서 한바탕 소리를 지른 후, 이른 오후 연희동에 있는 자취방으로 홀연히 떠났다. 여전히 종잡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떠나는 언니에게 다음에 또 오세요, 언제든 오세요. 라고 말하는 이유는 언니를 정의하는 단어가 생각났기 때문이고, 그 정의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는 지 물음표 없이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작가의 이전글 우째도 살아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