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여행
"국 더 부주까?"
국더부주까.. 도대체 무슨 말일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니 "국 더 부주까~" 한번 더 말씀하셨다. 온갖 감각을 동원해 질문의 뜻을 눈치를 채기 위해 애를 썼다. 천천히 단어들을 발음해보다 알았다. '아... 국 더 부어줄까? 국 좀 더 줄까?라는 뜻이구나! 이미 충분히 많은 양의 국을 먹고 있었기에 괜찮다며 사양을 했다. 그리고 속으로 쿡쿡 웃었다.
오래전 하동 여행을 할 때 식당에서 있었던 일인데 굉장히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벚꽃을 보러 진해와 하동으로 여행을 갔었다. 뚜벅이였기에 진해에서 하동까지 버스를 4번이나 갈아타고 어렵게 하동에 도착한 길이었다. 밥을 먹기 위해 하동시장을 찾았고, 허름하고 작은 국밥집을 발견했다. 해장국 전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식당에는 어르신 한 분이 식사를 하고 계셨고, 테이블이 두 개뿐인 그곳에 살며시 들어가 " 밥 먹을 수 있어요?"라고 여쭤보니 "예~!"라는 짧은 대답을 하셨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두리번 거리다 보니 밥이 나왔다. 특별히 주문을 하지 않았지만 밥이 나오는 걸 보니 메뉴는 한 가지뿐인 듯하다. 넓은 대접에 국 한 그릇, 밥 한 그릇 그리고 다섯 가지 반찬이 양은 쟁반과 함께 차려졌다. 경상도에서 많이 먹을 수 있는 돼지국밥이나 순대국밥을 생각했었는데, 진하게 끓인 씨락국이었다.
외할머니댁에 가면 할머니가 밭에서 딴 호박이며 오이로 만들어주시는 반찬이 생각나는 밥상이다. 땡초를 조금 넣어서 먹어 보라고 하셔서 국에 넣어 먹었더니 살짝 매콤한 게 맛이 더 진해진 느낌이었다. 무생채에 호박나물, 김치까지 솜씨 좋은 손맛이 제대로 전해지는 반찬들이었다. 옆 테이블의 어르신께서는 국 한 그릇을 비우시고 막걸리 한 병을 시키셨다. 그리고 국을 좀 더 달라고 하셨는데 어르신께 국을 떠 드리면서 나에게도 국 더 부주까? 라고 물어보신 것이었다.
국을 리필해주는 국밥집이라니. 너무 정겨워서 마음이 말랑해졌다. 오래된 국밥집이다. 벽에는 무려 네 개나 되는 달력이 나란히 붙어있다. 절에서 준 달력, 농협에서 준 달력, 맥주회사에서 준달력.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은 그 마음만 봐도 정이라는 게 느껴진다. 막걸리 한 잔이 그리운 이들에게 국 한 그릇을 더 내어주시는 마음. 혼자 밥을 먹는 내 앞에 앉아 커피를 드시면서도 불편할까 싶어 이런저런 질문 없이 그저 커피만 드시던 그 모습. 반찬이 모자랄까 밥이 모자랄까 챙겨주시는 그 마음 덕분에 나의 여행이 풍성하게 채워졌다.
밥 값이 얼마인지 몰라 만 원짜리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고 가게를 나왔다. 나중에서야 그 거스름돈을 세어보니 7000원이나 남아있었다. 국에 밥 한 그릇이 3000원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이라는 게 참 그렇다. 국밥집에서 정을 얻어가고, 커피집에서 커피보다 진한 감동을 배워간다. 일부러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게 여행이어서 자주 길 위에 서게 된다.
오래전, 그곳을 다녀온 뒤 하동 여행을 가면 종종 시장 안에 있는 그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여러 번 문이 닫혀 있었고, 시간을 맞추지 못해 다른 집에서 밥을 먹곤 했다. 그 후로 무려 7년이 지난 뒤 국밥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반찬도 씨락국도 여전했고 가격도 그대로였는데, 정이 많으시던 할머니 대신 다른 가족분이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다. 속절없는 흘러버린 세월이 야속해 씨락국을 먹으며 속으로는 울어야 했다.
씨락국=시래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