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1세가 되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청춘의 시절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건망증, 어깨 결림과 함께 40대에 들어섰다. 문득 중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과연 언제부터 중년이라는 단어 속에 포함되는 걸까? 초록창에 검색을 해보니 인간의 인생에서 청년과 노년 사이의 단계를 이르는 말로 마흔 살 안팎의 나이라고 한다. 또 다른 사전에서는 대략 40~59세 사이의 나이를 중년이라고 부른다고 쓰여있다.
50은 넘어야 중년이라고 부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미 내 나이는 중년에 이르고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 놀라워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40이 넘어서면서 달라진 점이 제법 많았다. 우선은 기억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많은 부모님들이 기억 못 한다고 타박하는 자식들의 잔소리에 '너도 내 나이 돼봐라~' 하고 응수했던 것이 증명되었다. 방금 생각한 것들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 뭔지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또 한 가지는 체력이 떨어졌다는 것. 물론 운동 부족의 이유도 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달라지는 체력은 나이를 무시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종종 아파서 고생했던 어깨 통증은 만성이 되었는지 매일 아프고, 무릎이 시리고 손목이 욱신거린다. 여기저기 고장 나고 아픈 빈도수가 많아진 걸 보면서 나이가 들었다는 걸 실감한다. 지금까지 전혀 관심 없었던 건강 보조 식품을 검색하곤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취향이 변했다. 입맛이 변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입이 짧았던 어머니가(엄마라고 쓰기 민망한 걸 보니 이것도 나이 듦의 증거인 듯) 어느 날부터 피자를 좋아하게 된 것이 참 신기했는데 지금 내가 그렇다. 좋아한다고 까지 말하기엔 부족하지만, 종종 피자가 먹고 싶어 지는 걸 보면 입맛이 변한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최근에 놀란 사실 중 하나는 '팥'이 맛있어졌다는 것. 호빵을 먹어도 야채 호빵을 선호했고, 찹쌀 도넛을 먹어도 팥 없는 도넛을 좋아했는데 어느 날부터 팥 있는 걸 먹고 있다.
어머니께 팥 있는 게 맛있다고 말을 했더니 '나이 들어서 그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엄마도 지금은 팥 있는 게 좋다고 하신다. 나의 중년이 시작됨 과 동시에 엄마의 노년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까지 어른이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왕이면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데 가능할까?
어른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궁금해 초록창에 검색을 해봤다. 세 가지 뜻이 나왔다.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아마 나는 나이를 제외하면 어른이 되긴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