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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끄 Sep 14. 2019

고독을 즐기는 당신은 비범한 사람


  시인 랄프 왈도 애머슨은 고독을 누리려면 성격이 비범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좀체 고독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라 요즘 들어 그 이유가 뭔지 궁금하던 참에 드디어 답을 찾은 것 같았다. 나는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재능”이 형편없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고질병이 하나 있는데,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간에 아주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동창회에 나간 것처럼 다 집어치우고 집에 가고 싶어 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건 고독한 한때를 보낼 때도 마찬가지다. 동네를 산책한다가 어디 카페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가 하고 있으면 괜히 낯선 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영 내가 있을 자리 같지 않다. 기분이 정말 엉망진창일 때는 자이언티의 노래처럼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어 진다.     



  그래서 상황에 녹아들지 못하는 요상한 괴리감을 어떻게 해보려고 예전에는 팟캐스트나 미드를 유화제로 썼다. 자기들끼리 신나서 조잘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외로움도 잡념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흐려진다. 음악처럼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여유가 생기는 건 안 된다. 스토리가 있거나, 웃기거나, 재미있는 정보가 있거나 아무튼 나를 잡념으로부터 떼어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런 버릇이 들면 뭔가 하나에 도통 집중할 수 없는 아주 산만한 성격이 되어버린다. 청각이든 시각이든 감각을 하나라도 비워두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진정한 고독은 감각을 자극하는 재미난 것들로부터 분리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 뒤에 찾아오는 후회, 원망, 부끄러움 같은 덧없는 감정들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 아마 그것이 고독에 필요한 재능일 것이다. 마음을 다스릴 수 없는 사람에게 고독한 시간은 생각들이 제 멋대로 떠들어대는 통에 결코 조용하거나 평화로울 수 없다.      



  예전에 스페인 순례길을 걸었을 때가 그랬다. 출발하기 전 그 정도로 걸으면 어떤 깨달음이 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잠깐 환경이 달라진다고 나라는 인간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첫날부터 장시간 산행을 하는 동안 같이 걷게 된 분이 쉴 새 없이 자랑을 늘어놓는 바람에 비위를 맞추느라 고역을 치렀다. 그분은 나를 바욘에서 만난 천사라고 했다. 과연 추억은 서로 다르게 기억되는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불쾌한 만남이었다. 그때 나는 킬트를 입은 스코틀랜드인 형제에게 농담이랍시고 남자인데 치마를 입고 있다는 무례한 말을 했다. 둘의 표정을 보고 바로 사과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타이밍을 놓친 나는 그날 식은땀을 흘리며 밤잠을 설쳤다. 한국에서나 거기에서나 바보 같은 실수를 후회하는 것에 사력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대단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 건 매한가지였다.



  소득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날씨가 좋을 때면 하늘이 예쁘다는 것을, 나는 스물여덟 살 그때 처음 제대로 인지했다. 아무리 번뇌를 줄줄이 메고 걷는다 한들, 비가 오는 날이면 쌍을 이루는 거대한 무지개나, 구름 훌쩍 너머로 보이는 하늘 저편의 시리도록 파란 심연을 끊임없이 마주치다 보면 결국은 짐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게 된다. 귀국하고 나서 굉장히 놀랐다. 습도가 잦아드는 날이면 한국의 하늘도 못지않게 푸르고 아름다운 것이다. 왜 그 전에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면 그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어쩌면 그 여유라는 것도 연습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약해짐은 행동의 불능이 아니라 행동하지 않음의 불능이다. 강해지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발타자르 토마스 <우울할 땐 니체>     



  고독을 즐긴다는 것에는 치기 어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고요함을 포근하게 받아들이는 어떤 구도자의 모습이 감돈다. 지금의 나에게는 잡념을 피하지 않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화창한 날의 아름다운 하늘에 마침내 시야가 트인 것처럼 언젠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독 안에서도 평온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풋내가 풀풀 나는 거창한 기대를 해본다. 이것은 아직 설익은 사람의 넋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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