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등급 받을 수 있을까

엄마와 치매와 함께 13

by 길 위에서

몇 달째 엄마가 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는 동안 다른 고민이 생겼다. 당시 머물던 요양병원도 만족스러운 편이었으나 장기적으로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주치의도 요양원 입소를 고려해 보자고 했다. 병원 건물의 6층에는 요양원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만족도가 높아 대기자가 많았다. 그 요양원에 입소할 경우 당시 주치의의 진료를 계속 받을 수 있고 원예치료와 음악치료도 계속 받을 수 있었다. 일단 요양원 입소에 필요한 장기요양등급부터 받아 보기로 했다.


그런데, 과연 장기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혼자 잘 걷고 말씀도 잘하시는 엄마가 아픈 사람으로 보일까 싶었다. 요양원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시설 3등급을 받아야 했다. 치매 등급 심사는 아직 시행되기 전이었다. 치매도 없고 정신이 맑은 어르신이 요양원에 들어가기 위해 작정하고 거짓말을 해서 등급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말도 들렸다.


엄마는 치매로 기억력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언어능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말수가 적어도 자연스럽게 말씀을 잘하시기 때문에 의심 가는 구석이 별로 없었다. 하루는 같이 복도를 산책하다가 병실 반대편 창을 통해 성당 건물을 보고 엄마가 말했다. “저 성당 옆을 돌아서 건널목 건너면 바로 우리 아파트 단지잖아.” 엄마는 그 건물이 엄마가 다니던 집 근처 성당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눈앞의 성당과는 삼사 킬로 떨어져 있는 다른 성당을 다녔고, 바로 그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아파트 단지가 다 비슷비슷해 보이니 충분히 착각을 일으킬 수 있었다.


며칠 후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집이 바로 옆인가 봐요.” 엄마가 얼마나 실감 나게 설명했을지 짐작이 갔다. 엄마가 거짓말을 하신 건 아니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술술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몇 달 후 아버지 기일이었다. 제를 지낸 후 친척들이 엄마를 보러 병원에 왔다. 모두 엄마 옆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다른 볼일을 보고 왔더니 삼촌이 커다란 사탕 꾸러미를 내밀었다. 필요한 거 없냐는 말에 엄마가 사탕이라고 대답하셨다며. “사탕은 안 돼요!”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입을 꾹 닫고 꾸러미를 받았다. 병원에 맡겨 두겠다고 얼버무렸다. 사탕 심부름을 다녀온 사촌동생과 조용히 얘기했다.

“사탕을 저렇게 많이 사 오면 어떡해? 사탕 끊으려고 난리 중이구먼.”

“근데 큰어머니 말씀이 진짜 설득력 있었어. 기침 나오려고 할 때 사탕 한 알 입에 넣고 있으면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던 것도 가라앉고,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거든.”


아무튼, 건강보험공단에 찾아가 장기요양등급 신청서를 냈다. 병원으로 온 심사관은 병실에서 엄마와 상담하고 나서 밖에서 보호자인 나를 만났다. 가족 관계와 엄마의 생일, 엄마의 상태 등을 물었다. 나중에 간병인이 옆에서 들은 대화를 내게 전했다. 엄마 생일은 1월인데, 생일 날짜는 모른다고 했고 계절을 물어보자 여름이라고 했다. 또 입원 전에 어디서 누구랑 살았느냐는 질문에는 딸과 같이 살았다고 했다. 말씀은 잘하셨지만 내용은 대부분 사실과 달랐다.



2014년 4월 7일

나흘 전에 건강보험공단 직원과 면담 후 병원에 좀 더 머물렀다. 엄마는 거의 10초 간격으로 사탕을 달라고 했다. 나는 밥 먹고 나서 주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탕 먹으면 밥맛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더니 엄마는 ”효~녀 났네!”라고 말하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봤다.

어제는 호박죽을 끓여서 가져갔다. 엄마가 드시는 동안 가만히 보니 연둣빛 조끼가 다른 날과 달리 아주 깨끗했다. 깨끗한 조끼를 입고 있으니까 참 예쁘다고 말했더니, 엄마는 “말하는 거 좀 봐라!”라고 쏘아붙였다. 검은 조끼가 더 따뜻하다고 화를 냈다. 검은 조끼는 임시로 입혀 드렸던 내 옷인데 더 두꺼운 건 사실이다.

내 마음을 찌르는 면도 있었던 엄마 말이 떠오를 때마다 피식피식 웃었다. 기억을 잃어도 남아있는 언어능력을 실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일기 중에서)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판정은 재가 3등급으로 나왔다. 시설이 아니라 집에서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등급이었다. 집에서 돌볼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재신청해서 시설 3등급 받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엄마의 가족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재신청 결과 시설 3등급이 나와 요양원 입소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기댈 곳이 생길 수 있다는 기대는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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