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즐거운 거짓말

엄마와 치매와 함께 15

by 길 위에서

요양원 출입문 안쪽에는 번호 키가 달려 있었다. 바깥에서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문을 열 수 있지만 안쪽에서는 비밀번호를 눌러야 문이 열렸다. 문 옆에는 “배회하는 어르신이 계시니 문을 꼭 닫아 주세요.”라는 안내 글이 있었다.


요양원에서는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어르신을 복도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집에 간다고 하셨다. 그러면 간호사나 요양보호사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르신, 어디 가시려고요? 집에요? 오늘은 너무 늦었잖아요. 여기서 자고 내일 가세요.” 어르신을 달래서 방으로 모시고 갔다.


병원 옆 성당을 엄마가 다니던 성당으로 착각하고 우리 동네 아파트를 설명했던 엄마가 몇 달이 지나자 아파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대신 초가집 이야기를 자주 했다. 아주 구체적이었다. 방은 두 칸이 있는데 하나는 손님방이고 마당에는 텃밭이 있었다. 엄마가 어릴 적에 살았던 집인가? 이모한테 물어보았다. 이모 말로는 옛날에 살던 집은 초가집이 아니라 기와집이라고 했다. 이모가 엄마보다 5살 아래니까 이모가 기억 못 하는 더 옛날의 집이었을까? 아무튼 엄마 기억에서 최근의 집은 사라졌다. 그래도 아파트라는 집 형태가 기억에 남아 있는지 그 초가집을 팔아서 아파트를 사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시간이 더 지나 요양원의 같은 자리에서 일 년 넘게 지내고 난 뒤였다. 엄마가 말하는 집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엄마 집이 어디야?”

엄마는 침대를 가리켰다. 그 자리를 엄마의 집이라고 생각하신 것이었다.

“엄마는 이 집이 마음에 들어?”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집이 엄마 마음에 든다고 하시니.”


생각이 이렇게 바뀌는 과정을 그저 ‘어느 치매 환자의 증상’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80년 삶 속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게 많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복도를 배회하는 어르신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했다.


"모든 행동에는 다 원인이 있다. 집을 나가 거리를 헤매는 ‘배회 행동’에는 마음 편하게 살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이러한 불안과 쓸쓸함을 이해하고 나면 대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치매를 산다는 것》 (오자와 이사오 저 / 이근아 역)이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정신과 의사이며 오랜 치매 치료 경험이 있는 저자는 배회 행동을 “새로운 것에 대응하지 못해 느끼는 혼란”이라고 설명하면서 “설득하기보다는 환자의 내면세계에 맞춰 납득할 수 있는 거짓말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라고 썼다. 사실과 좀 다르다는 의미에서 ‘거짓말’이라고 표현한 것이리라. 실제로 그런 거짓말은 따뜻했다. 불안과 쓸쓸함을 이해하면서 건네는 거짓말을 옆에서 듣고 있으면 부드러운 파동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는 엄마가 심부름을 시켰다. 복도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선반이 있다고 하며 그 선반까지 가는 길을 상세히 설명했다. 나도 처음엔 진지하게 들었다. 두 번째 칸에 독약이 있으니 그걸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독약을 먹고 죽겠다는 엄마의 표정이 많이 어둡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슬그머니 대화를 딴 데로 돌렸다. 또 며칠 후엔 엄마가 독약이 없어졌다고, 그걸 방에 갖다 뒀어야 하는 건데 밤새 누군가가 가져간 모양이라고 했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래? 없어졌어?” 한동안 엄마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게 독약 이야기를 가끔 했다.


어느 날엔 “느그 집에 다녀왔다.”라고 했다. 내 집 베란다에 뭐뭐가 있고 어쩌고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그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다. 엄마와 내가 그렇게 사이좋게 살갑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그게 지어낸 이야기든 거짓말이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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