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되찾다

엄마와 치매와 함께 16

by 길 위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입소 후 6개월쯤 지나자 엄마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열이 올라서 입원하는 일도 없어졌다. 강박적인 행동도 줄었고 대화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고 나도 마음이 덜 무거웠다.


병원에서 치매 검사를 받은 지 1년이 지나자 주치의는 다시 검사를 권했다. 굳이 MRI 검사까지 또 받아야 하는지 의문도 들었지만 검사에 동의했다. 일상이 비교적 안정적이라서 1년 전에 비해 크게 나빠지지 않았다는 결과를 은근히 기대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MRI상으로 뇌가 더욱 위축되는 변화가 눈에 띄었고 인지검사 점수가 19점에서 9점으로 떨어졌다.


물론 환각인지 엄마가 이상한 것을 보기도 하고 이상한 말을 하실 때는 있었다. 병실 천장에 달린 형광등의 스테인리스 판에 병실 풍경이 비춰 보였다. 엄마는 그것을 실제 세계로 보는 것 같았다. “저 위에 사람이 셋이나 있네.”라고 말하기도 했고,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형태를 묘사하기도 했다. 심지어 활 쏘는 사람이 있다고도 했다. 엄마가 보는 세상은 좀 달랐다. 나는 그 세상을 모르니 대충 둘러댔다. “그래? 엄마, 난 눈이 나빠서 그게 안 보이는데 엄마는 잘도 보네.”


검사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내가 체감하는 기준으로는 좋은 변화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반가웠던 변화는 엄마가 다시 웃었다는 사실! 엄마는 2년 넘게 거의 무표정했다. 목소리까지 낮은 편이어서 말이 더욱 무뚝뚝하게 들렸다. 입소 후 힘든 시기를 함께한 요양보호사 김 선생님은 친근해진 뒤에 반 농담으로 이런 말도 했다. “어머니, 군인처럼 말씀하시네요. 말씀 좀 부드럽게 해 주세요.”


요양원에서 두 번째 맞은 추석날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가 환하게 웃었다. 큰 소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기뻤다. 엄마의 웃음 근육이 회복된 것 같았다. 내가 병실에 머무는 동안 여러 번 미소를 지었다. 1년 전쯤 집 앞 공원길을 걸으면서 작은 소망 하나 떠올랐던 순간이 기억났다. ‘엄마가 다시 웃을 수 있었으면...’ 강렬한 소원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그때 그 길의 햇살과 공기를 몸이 기억했다. 그리고 소망이 이루어졌다.


이날 병실에는 윤 어르신 가족들이 많이 와 있었다. 어린 아기가 어르신 며느리 품에 안겨 옹알이를 하고 있었다. 아기를 보는 엄마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아기 보니까 엄마 기분이 좋구나.”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아기의 큰아빠는 큰 소리를 내는 어린 조카에게 잘하고 있다고, 더 크게 소리를 지르라고, 그래야 병원에 활기가 돈다고 말했다.


고관절 골절 후 주로 침대에서만 지내던 엄마가 이날은 휠체어에 앉아 계셨다. 옥상 산책을 가자고 하니 엄마는 순순히 응하셨다. 출입문을 나설 때 나는 일부러 문만 잡고 있었다. 엄마가 휠체어 바퀴를 굴려서 나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엄마의 운전 솜씨는 꽤 좋았다. 좁은 화장실로 휠체어를 밀어 넣던 실력이니까. 복도로 나온 뒤부터 내가 휠체어를 밀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방문객이 많은 추석이라 옥상도 사람들로 붐볐다. 테이블이나 평상이 있는 자리는 다른 가족들이 다 차지했다. 나무 칸막이를 등지고 앉아서 바로 앞 화단의 허브들을 바라볼 수 있게 자리를 잡았다. 눈이 밝은 엄마는 시든 잎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물을 제대로 안 줬다고 걱정했다. 허브 화단에는 벌들이 많이 날아들었다. 바깥바람 쐬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별 얘기를 하지 않고 엄마와 나란히 앉아서 경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몇 달 전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였다. 평화로운 순간이 오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다. 엄마는 이제 가끔 웃기까지 했다. 꽃이 피었다고 한 마디를 하면서도 웃었다.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엄마는 점점 더 잘 웃었다. 나는 엄마를 웃게 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아주 간단했다.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내가 웃으면 엄마가 곧 따라 웃었다. 때로는 미소가 은은했고, 때로는 얼굴의 큰 주름이 더 깊어지고 얼굴 전체가 자글자글할 정도로 크게 웃었다. 가끔 옆에서 나와 요양보호사가 이야기하다가 크게 웃으면 엄마는 이유를 잘 몰라도 껄껄 같이 웃었다. 웃음이 마치 전염되듯이. 치매에 관한 책에서 읽었다. 안 좋은 이야기를 할 때도 얼굴만큼은 웃는 표정으로 말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치매 환자는 감정에 민감하고 부정적 감정은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21일

엄마를 만나러 가면서 물티슈, 귤, 배를 챙겼다.

배를 먹던 엄마가 말했다. “별로 달지도 않네.” 내가 점심때 맛보았을 때 맛있었는데 엄마는 달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 드셨다. 까다롭고 트집 잘 잡는 성격은 아직도 남아 있다. 나는 “그래도 시원하고 맛있잖아.”라고 대꾸했다.

엄마는 오늘도 옆 침대에 계시는 윤 어르신의 키 이야기를 했다. “저 사람 키 참 크지? 남자 같다.” 엄마를 만날 때마다 듣는 말이었다. 엄마는 똑같이 말했고 나는 처음 듣는 것처럼 대답했다. “정말 크시네. 젊으셨을 때 농구 선수였대.”

오늘은 새로운 이야기도 있었다.

“저 사람 잘 사는 거 같다.”

“엄마가 어떻게 알아?”

“찾아오는 자녀들 보면 옷도 잘 차려입고 있거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뭔가 마음에 걸렸다. 갑자기 내 목소리가 올라갔다.

“엄마! 그럼 나는 가난해 보여?”

2초쯤 지난 뒤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하하하 크게 웃었다. 속이 시원했다.

(일기 중에서)


이 해 겨울에는 대봉을 자주 갖다 드렸다. 단단한 대봉을 사다가 식탁 위에 두고 엄마한테 갈 때마다 말랑말랑해진 것을 한 개씩 챙겼다. 엄마는 대봉을 아주 잘 드셨다. 대봉을 세 번째 먹던 날에는 한두 숟가락 드신 후에 “맛있다.”라고 말로도 표현하셨다. 내년 겨울에도 엄마가 대봉을 저렇게 잘 드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올겨울에 많이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맛있지? 집에 감 많이 있으니까 다음에 또 가져올게.”

엄마는 눈을 크게 뜨면서 물었다.

“우리 집에 감나무 있냐?”


그 말을 듣고 나도, 옆에 계시던 요양보호사 선생님도 껄껄 큰소리로 웃었다. 엄마도 우리를 따라 크게 웃었다. 엄마 뺨에 가득한 주름이 예뻐 보였다. 엄마는 직전에 먹은 대봉의 맛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봉을 먹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함께 큰소리로 웃으며 느낀 좋은 기분은 엄마의 기억 어딘가 남을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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