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치매와 함께 18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는 전날 미리 다녀오고 설날 아침에는 요양원에 갔다. 엄마 방 쪽으로 복도를 걸어가는데 그 방에서 깔깔 웃으며 뛰어나오는 장 선생님이 보였다.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장 선생님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더니 할머니 네 분이 모두 일렬로 휠체어에 앉아 계셨다. 얼굴이 다 환했다. 장 선생님은 세배를 하니까 어머니들이 좋아하셨다며 나더러 세배를 하라고 하셨다. 나는 세배를 하고 나서 집에서 부친 생선 전을 꺼냈다. 장 선생님 허락을 받고 다른 할머니들께도 나눠 드렸다. 그렇게 음식을 나눠 먹으니 설 기분이 났다.
장선생님을 만난 건 엄마에겐 분명히 복이었고 내게도 행운이었다. 첫눈에 장 선생님은 그다지 친절한 인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르신들을 위하는 마음이 하나씩 보였다. 어르신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춰 여유 있게 대응하는 것 같았다. 어르신들과 좀 엉뚱하게 들리는 이야기 나누는 게 재미있다고도 하셨다. 내가 물었다. “요양보호사 일을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장 선생님은 대답 대신 다른 말씀을 하셨다. “밤 근무 끝내고 아침에 밖으로 나가면 공기가 달라요. 아주 달아요.” 그 말씀이 유난히 기억에 남아 있다.
엄마 옆 자리에 아흔 넘은 복동 할머니가 새로 오셨다. 기억력도 좋고 아들과 휴대전화로 통화도 하셨는데, 누워 지낸 세월이 긴 탓에 다리가 점점 오그라들어 잘 펴지 못했다. 그래서 기저귀 가는 것도 싫어하셨고, 다리 아프다고 가끔 욕도 하셨다. 장 선생님은 할머니의 “십팔번 노래”가 베사메무쵸인 것을 알고는 옆에서 흥을 돋우면서 노래를 부르시게 했다. 어느 날 나는 할머니 노래를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두 달 전에는 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발음이 꽤 분명했다. 목청까지 좋아져서 노랫소리가 우렁찼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죠?”라고 하자, 장 선생님은 거의 매일 노래를 불렀다고 하면서 으쓱하셨다. 장 선생님이 한 번 더 부르시라고 하니 복동 할머니는 이렇게 대꾸했다. “노래는 내가 부르고 싶을 때 불러야지!” 복동 할머니 덕분에 우리는 많이 웃었다.
하루는 복동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물론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 아들이 언제 다녀갔는지 언제 오는지도 정확히 기억하시는 분인데 그렇게 혼동하는 게 좀 의아했다. 장 선생님이 복동 할머니를 말리다가 말했다. “똥 눈다고 동네방네 얘기하지 마시고 살짝 누세요. 그럼 내가 가림막 치고 아무도 모르게 치워 드릴게요.” 역시 장 선생님! 재치 있는 말씀이 참 따뜻했다.
방에 계시는 다른 할머니에게는 눈 뜨시라는 말을 자주 했다. “엄마, 엄마! 나 좀 봐요. 눈 뜨고 내 얼굴 한 번 봐 주세요.” 두 사람을 보는 내 눈에 궁금한 기색이 역력했는지 장 선생님이 설명했다. “이 어머니는 늘 눈을 감고 계시는데요. 계속 이러면 나중에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게 돼요.”
어느 날, 병실에 들어서는 나를 보신 장 선생님이 갑자기 창가에 있는 화분을 들고 와서 엄마 눈앞에 들이밀었다. “어머니, 이거 이름이 뭐죠?” 엄마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기만 했다. 장 선생님은 좀 기다리다가 운을 뗐다. “페!” 엄마 입이 움직였다. “페페로미아.” 장 선생님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보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엄마, 그렇게 긴 이름도 기억해? 나보다 낫네!”
다섯 글자 단어를 기억하다니 기적 같았다. 장 선생님이 원예치료에서 심은 화분을 수시로 엄마한테 보여주면서 반복해서 이름을 알려주신 덕분이었다. 여러 달 동안 함께 지낸 요양보호사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가 페페로미아 같이 어려운 단어를 외우시다니!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가 유지되고 적절한 자극이 주어지면 인지능력도 좋아질 수 있는 걸까? 노인도 운동을 꾸준히 하면 근육량이 늘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치매 환자 돌봄에서는 남아 있는 기능을 잘 활용하도록 도와줄 것을 강조한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기능은 저하될 수밖에 없을 텐데, 치매의 경우 인지와 감정 영역에서 그런 저하가 일어나지만 다시 활발하게 사용하면 기능이 개선된다고 한다. 알츠하이머 환자인 크리스틴 브라이든이 쓴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에서 읽은 내용이다. 마음이 따뜻하고 부지런한 장 선생님이 몸으로 보여준 효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