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유가 있다

엄마와 치매와 함께 19

by 길 위에서

낙상은 요양원에서 매우 경계하는 사고다. 엄마도 넘어진 적이 여러 번 있었고 침대에서 내려가다가 주저앉아 결국 고관절이 부러졌다. 이미 걷지 못하는데도 침대 아래로 내려오려고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엄마가 침대 옆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이불까지 제대로 깔고 누워 있었다.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엄마를 침대로 올려드리고 살펴보았는데 다행히 별 이상이 없었다. 며칠 후 방문했을 때 이 사건을 듣고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왜 바닥에 내려와 잤어?” 그냥 물어본 것이었는데 엄마 대답이 재미있었다. “손님이 와서 침대 내주고 난 바닥에서 잤다.” 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 그랬구나.”


이런 일도 있었다. 새벽에 엄마가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하는 것을 보고 장 선생님이 “어디 가시려고요?”라고 물었더니 엄마는 집에 간다고 했다. 집에 왜 가느냐고 다시 물으니까 시동생한테 돈 받을 게 있다고, 오만 원 받으러 간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음이 터졌다. 우리 부모님은 아버지의 막내 동생인 삼촌을 큰 아들처럼 뒷바라지하셨다. 결과는 아름답지 않았고 아버지와 삼촌은 사이가 멀어져 왕래조차 끊어졌다. 아버지의 화가 워낙 거센 분위기 속에서 별 내색을 안 했던 엄마가 삼촌한테서 돈을 받겠다고 하셨다니까. 내가 깔깔 웃으니 장 선생님은 사연도 묻지 않고 빙그레 웃으셨다.


엄마의 이상한 행동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지어내는 것 같은 이야기에도 이유가 있음이 분명했다. 《치매 노인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오이 겐 저)라는 책에서 이런 내용을 읽었다.

“사람들은 바깥 세계에서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이 현실을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뇌는 보고 듣고 만지는 지각을 과거의 경험에 근거하여 조립한다. 치매 상태든 아니든 사람의 현실은 사물이 아니라 의미의 연결로 성립한다. 따라서 바로잡을 필요가 없다.”


치매 노인의 거짓말도 나름대로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한다. 어떤 물건을 다른 사람이 찾는데 그 물건이 이제 보이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치매 노인은 누군가가 그 물건을 훔쳐 갔다고 말하고 그 상황을 그런 식으로 끼어 맞춰 인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엄마가 자꾸 화장지를 뭉쳐서 코 안에 밀어 넣는 일이 있었다. 요양보호사 말로는 간호사가 핀셋으로 화장지를 조심스럽게 빼내고 가면 엄마는 또 밀어 넣기를 반복했다. 내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화장지는 왜 코 안에 넣어?” 엄마가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는데 대답은 없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콧물이 나와서 그랬어?” 엄마가 흡족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장 선생님한테서 마음이 묵직해지는 이야기도 들었다. 요양원에서는 인지 유지를 돕기 위해 노래 가사나 간단한 일기 같은 글을 쓰게 했다. 엄마가 일기를 쓰고 있을 때 장 선생님이 다가가서 말했다. "딸 보고 싶다고, 빨리 오라고 쓰세요." 엄마는 쓰지 않았다. 다시 말해도 마찬가지였다. 장 선생님이 딸 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빨리 오라는 글은 끝끝내 쓰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마음이 찡했다. 엄마는 치매에 걸려서도 딸에게 부담 주기 싫은 마음을 꼭 붙잡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엄마는 여전히 ‘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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