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치매와 함께 20
한동안 무표정했다가 다시 웃게 된 엄마는 고맙다는 인사도 자주 하셨다. 휠체어에 앉혀드려도, 자리에 눕혀드려도, 식사를 갖다 드려도, 옷을 입혀 드려도 꼭 “고맙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말했다.
잘 지내던 엄마가 좀 이상했다. 축 처지고 가라앉은 모습이 여러 주 계속되었다. 2년 전에 재검사를 받고 약을 조절하는 동안 약에 취해서 몸이 고꾸라질 지경이었던 때와 비슷했다.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주치의는 다시 입원해서 약을 조절하자고 했다. 체력이 점점 떨어지다 보니 2년 전에 적절했던 약을 지금의 컨디션이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입원에 동의했으나, 방이 바뀌어 엄마가 혼란에 빠지는 소동을 오랜만에 겪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입원한 엄마는 기운이 없어서 그랬는지 ‘내 방’으로 가자고 하지도 않았다. 저녁밥이 나오자 숟가락을 들었다. 그때 검사부터 받고 식사하라는 전갈이 왔다. 내가 밥을 치웠더니 엄마는 “다른 사람들 밥은 나왔는데 나만 왜 밥이 안 나와?”라는 말을 몇십 초 간격으로 반복했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 이따. 검사부터 받아야 한대.”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MRI실로 내려갔다. 엄마는 지시를 잘 따랐고 장비를 머리에 작용했다. 처음엔 귀마개 쓰기를 거부했지만 곧 순순히 따랐다. 기기 안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말도 잘 들은 모양이었다. 촬영이 순조롭게 끝난 후, 병실로 돌아와 식사를 하셨다.
엄마의 ‘발뒤꿈치 욕창’을 기억하는 낯익은 간병인이 그 병실에 계셔서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엄마가 낯선 환경에서 별일 없이 잘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이번에도 첫날은 밤새 또 기저귀 찍찍이를 뜯었다 붙였다 했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불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며칠 후에는 잘 주무셨다고 간병인이 전했다.
내가 면회 갔을 때, 엄마는 기운을 좀 차리는 중이었다. 앞 침대 할머니의 딸을 보고 말했다. “머리도 아주 길고 멋있다.” 그 딸은 긴 머리를 땋아 늘어드리고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한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지냈던 엄마 눈에 예쁘고 멋있는 것들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만든 단호박죽도 잘 드셨다. 맛있느냐고 물으니 고개까지 끄덕이며 맛있다고 하셨다. 엄마의 반응을 보던 할머니 딸이 우리를 몹시 부러워했다. “할머니가 참 잘 드시네. 세상에! 말씀도 잘하시고!” 할머니 코에는 관이 삽입되어 있었다. 비위관(콧줄)으로 영양을 공급받아야 하고 말씀도 못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 딸은 우리 엄마의 상태가 얼마나 부러웠을까?
이날 나는 마음을 한 번 더 다졌다. 잃어버린 것들을 아쉬워하지 않기로, 지금 남아 있는 능력을 고마워하면서 현재 상태를 마음껏 받아들이기로 말이다. 언젠가 엄마의 치매가 훨씬 더 나빠져 부드러운 음식조차 넘기지 못하고 말도 못 하는 날이 올 수 있다. 그러면 나는 현재 상태를 그리워할 것이다. 엄마의 치매를 지켜보는 동안 나도 현재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했다. 더뎌도 의미 있는 변화였다.
할머니 딸은 엄마의 묵주를 보고 천주교 신자이냐고, 세례명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내가 일부러 뒤로 물러났더니, 엄마가 “아녜스”라고 대답했다. 또 내가 병실을 나올 때 “오늘 고마웠다.”라고 말했다. 할머니 딸이 웃으면서 말했다. “자식한테 고맙다고 하시네.” 그 말이 신기하게 들렸을까? 우리 엄마는 자주 하시는 말인데.
엄마는 일주일 만에 퇴원했다. 오후에 요양원으로 돌아갔고, 나는 저녁에 병원으로 가 병원비를 내고 6층 요양원으로 올라갔다. 같은 곳에 오래 있다 보니 편리한 점도 생겼다. 바쁠 땐 내가 안 가도 병원과 요양원 측에서 입원이나 퇴원 절차를 먼저 진행해 줘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
엄마는 이미 저녁을 다 먹고 자리에 누워 있었다. 요양보호사님이 말했다. 오늘이 정해진 목욕날은 아니지만 그냥 씻겨 드렸는데, 엄마가 목욕 후 “많이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고. 오늘 인사는 좀 더 특별했다. 익숙한 자리로 돌아와 편안하고 또 목욕까지 해서 개운하신 모양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하는 선생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듣는 나도 기뻤다.
엄마가 말했다.
“여기는 비 와도 비 안 맞고 좋아.”
“엄마, 요즘 비 새는 집 별로 없어.”
“안 그렇다.”
“그래?”
편안해 보이는 엄마를 보는 나도 편안했다. 엄마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 비도 안 새고, 이 집 좋네.”
엄마의 고맙다는 말은 점점 호사스러워졌다. “딸 덕에 호강했네.”라고도 했다. 심지어 “딸이 최고다.”라는 말도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엄마가 웬일로 칭찬을 다 해? 오늘은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라는 말이 내 입에서 반사적으로 나갔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 뚱한 내 반응에 기가 찼다. 엄마의 칭찬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 그랬을까? 치매 초기에 내가 장을 봐 드리면 엄마가 고맙다고는 했다. 그때 말은 차갑게 들려서 하나도 반갑지 않고 오히려 서운했다. 그런데 이제는 따뜻하게 들렸다.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도 너무 늦기 전에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고 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 별일 없이 잘 지내서 고마워.”
“내 이름을 기억해 줘서 고마워,”
“식사를 잘하시니 고마워.”
그리고 내 생일날, 오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말했다.
“엄마, 오늘이 내 생일이야. 낳아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