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서 자유로운 행복

<어느 애주가의 고백>을 읽고

by 길 위에서

내가 보기에 좀 이상한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 책 표지를 보니 “술 취하지 않는 행복에 대하여”라는 부제와 “내가 사랑한 술, 놓쳐 버린 삶”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술을 좋아하지도 마시지도 않는 내가 왜? 머릿속 생각과 달리 손이 책을 놓지 않았다. 뜻밖에도 이 책은 내 귀에 쏙쏙 박히는 말들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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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가 술 마시는 날이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어린 시절부터 쭉 그랬다. 그나마 내 마음이 편했던 날은 아버지의 술 때문에 심한 소동이 일어난 다음날이었다. 그날만큼은 아버지가 술을 자제할 확률이 좀 있었다. 자제를 기대했으니 최악의 알코올 중독 상태는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마지막 2년은 술에서 자유로웠다. 신장 투석 ‘덕분’이었다. 자유로움을 느낀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나였다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아버지의 심정을 들어본 적이 없다. 팔십 대 노인이 수십 년 간 마신 술을 끊기까지 투석과 음주와 가족 다툼이 나란히 가는 날들이 있었다. 그때와 그전의 기억은 아직도 가끔 내 몸에서 격렬한 반응을 일으킨다. 반응을 내 몸에 차곡차곡 쌓아둔 탓이니 이건 순전히 내 문제라고 받아들이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떠나시던 당시 원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감사했다. 고맙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나의 관계에서 수십 년 동안 텅 비거나 갈등하는 순간만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술과 싸우느라 아버지와 나누지 못한 대화가 아쉽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이게 술로 인해 “놓쳐 버린 삶” 아니고 뭐겠는가.


이 책에서 저자 다니엘 슈라이버는 술과 얽힌 자신의 경험을 세세하게 말한다. 처절하게 솔직하다. 불행하고 비참했던 삶을 기록하는 일이 힘들고 과거를 부정하고 싶은 자아가 있다고 털어놓으면서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알코올 의존증을 파고든다.


2장 ‘끝이 보이지 않는 공허함 속에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현실을 직시하면 가슴이 서늘하다.


술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중독자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러다 그 에너지마저 소진되는 때가 온다. 술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지만 술과 함께하는 삶도 상상할 수 없게 되고 마는 시점이 온다. (중략)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서도 심각하게 술에 빠져 사는 사람도 많다. 겉으로 보면 생산적이고 그럴싸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뒤로는 끊임없이 이를 악물고 버티는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전쟁터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술에 손을 뻗는다.


나는 이 책을 또 다른 중독의 관점에서 읽었다. 내가 조심하는 대상은 당 중독이다. 당뇨 전단계라는 위험 신호도 있고, 무엇보다 달달한 후식의 유혹을 방어해 내지 않으면 오히려 밥을 잘 먹고도 허기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저혈당 증상이 찾아오는 지경에 이르면 어쩔 수 없이 당을 보충해야 하니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가 더 어려워진다.


지난여름을 보낸 후 당화혈색소 검사 결과가 당뇨로 넘어가기 직전 상태로 나빠졌다. 당뇨가 생활습관병임을 잘 알고 있으니 식생활을 다시 점검했다. 무더위에 힘들다는 핑계로 슬슬 손을 뻗치던 빵이 어느새 아침 식탁에 오르고 있었다. 당 지수 높은 음식을 아침 공복에 먹으면 혈당이 더욱 치솟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게 아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식단을 조절했다. 어쩔 수 없이 배고픔을 참아가며 노력한 결과, 허기진 느낌이 줄어 일상을 크게 방해하지 않았다. 이 상태로 쭉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 달콤한 거 한 번쯤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한 번만’ 후에는 ‘한 번만 더’가 따라붙고 안정감에는 균열이 생긴다.


내 경험과 잘 들어맞는 경고를 책에서도 발견했다. 저자는 금주 초기에 ‘핑크색 구름’ 위에 앉은 듯한 멋진 상태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숙취가 사라져 상쾌하게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의 경고를 들어보라.


핑크색 구름이 걷히고 나면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로 버티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 잠시 너무나 좋았던 이런저런 감정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맑은 정신이 특별함이 아닌 일상이 되어 갈 때쯤이다.


내 경험에 저자의 경고가 더해지니 나의 현 상태가 더 뚜렷이 인식되었다.


6장 ‘다시 기대지 않고 살 수 있을까?’는 이 한 마디로 시작한다. “단지 오늘만.” 이 짧은 문장을 읽고 달달한 것이 당길 때 내가 반복한 생각을 떠올렸다. “이번만.” 또는 “오늘 하루만.” 마치 각오인 것처럼 내세운 변명이었다. 그런데 책에 나오는 ‘단지 오늘만’은 정반대의 의도를 담고 있다.


단지 오늘만은 A.A.의 대표 구호다. 딱 오늘 하루만 술을 마시지 않고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자는 결심이 담긴 구호다. 다음 날이 되고 새로운 아침 이 시작되면 A.A.의 구호도 함께 잠에서 깨어난다. 그날의 새로운 구호가 생긴 셈이고, 그날만 지키면 되는 하루짜리 목표다.


A.A.는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Alcoholics Anonymous) 모임을 일컫는다. ‘알코올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는 약 200만 명이 활동하는 국제적 상호 협조활동 모임’라고 부록에 소개되어 있다. ‘단지 오늘만’은 변명이나 핑계가 아니라 일단 오늘 하루 무사히 지내보자는 결심의 구호다.


과연 단 하루를 잘 넘기는 것으로 중독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좀 더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뒤따른다. 10장 ‘술을 내 생에서 포기한다는 의미에 대해’에 나오는 아래 내용은 냉철하고 또 고무적이다. ‘단지 오늘만’이 행동으로 한발 내디딜 힘을 주는 훌륭한 구호이며 뾰족한 다른 방법이 없다고 납득하게 된다.


신경생물학의 용어를 빌리면 알코올의존증은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필요하다고 믿는 단 하나의 물질, 알코올을 얻기 위한 뇌의 프로젝트다. 뇌의 지시에 따라 주의력을 단 하나의 물질에 집중시키면 다른 것들로는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술을 끊고 나면 그것이 가능하다. 한 번 의존증에 빠진 뇌 역시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지만 삶의 의미를 되찾고 기쁨을 느끼며 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머릿속에 넣는 것은 배워 나갈 수 있다.


나의 뇌가 당에 반응하는 회로는 이미 정상을 벗어나 있음을 인정해야겠다. 아버지 뇌의 알코올 반응이 정상이 아니었듯이 말이다. 내가 마시는 술 한 잔은 그걸로 끝날 수 있고 아버지가 드신 단팥빵은 보통의 음식일 수 있었다. 그러나 단팥빵이 나의 뇌에, 술 한 잔이 아버지의 뇌에 주는 자극은 뇌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뇌가 특정 자극을 쫓는 방식으로 변해 있기에 그렇다.


중독의 현실이 이러니 암울한 건가? 저자는 오히려 자신이 금주를 결심한 순간이 ‘깨달음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장 ‘은총의 순간’에 이렇게 썼다.


모든 중독자, 음주가는 이 깨달음의 순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두꺼운 자기기만이라는 구름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순간, 자신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는 두려움의 순간 말이다.
이것은 우연한 감각이 아니다. 그 신호는 자주 있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은 느닷없이 왔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진정한 내면에 혁명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다. 그것을 미리 계획하고 구조를 짜는 것은 불가능하며 마법의 힘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그런 순간이 닥쳤을 때 이미 내면에 그 결심을 실천할 수 있는 풍요로운 땅이 있다는 것만 얘기할 수 있다.


저자의 주장에 반발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별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술을 끊어야 해? 술의 순기능을 열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나도 잠시 혼란스러웠대. 이때 오래전에 읽은 에리히 프롬의 글이 떠올랐다.


<소유냐 존재냐>와 <존재의 기술> 등을 쓴 프롬은 ‘소유 지향’을 경계하고, 소유물을 포기할 때 생기는 불안과 두려움을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소유물로 그치지 않고 습관, 익숙한 생각, 말투까지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아침식사 습관까지! 이런 내용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뭐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다. 당 중독이라는 현 상태를 자각하고 있는 지금은 프롬의 주장이 과하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의 말을 곱씹는 중이다.


술을 싫어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내가 애주가의 고백을 경청하는 날이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좋은 친구와 값진 경험을 나눈 기분이 든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은 단지 알코올 중독에 대해 말하는 책이 아니다. 중독에서 자유로운 일상의 행복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강렬하지 않지만 더 다양하고 지속 가능한 행복과 만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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