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부터 수성동 계곡까지-2(돈의문터- 경교장-기상박물관-홍난파가옥)
- 돈의문터 -
이 주변에 돈의문(敦義門)이 있었다. 돈의문은 보통 서대문(西大門)이라 부르는, 한양도성 4대문 중 하나이다. 태종 때 풍수상 좋지 않다 하여 도성 서쪽 문을 폐쇄하고, 멀지 않은 곳에 새로 지어 서전문(西箭門)이라 이름 붙였다. 세종 4년, 도성을 대대적으로 다시 쌓을 때 서전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돈의문을 지었으니 그게 세칭 서대문이다. 1899년 ’마포 종점‘~아현동을 거쳐 도심으로 들어가는 전차 노선의 복선화 공사 시 헐려서 지금은 이름만 남아 있다. 강북삼성병원 동쪽 모퉁이에 있는 인도(人道) 계단에 ’돈의문터‘라고 안내판이 2020년까지 설치되어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완전히 제거하고, 횡단보도 건너편 정동 입구에 표지판 형태로 다시 세웠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원래 자리에 더 가까운 곳에 세운 것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때종 때 옮겨 지은 '서전문' 때문인지, 세종 때 새로 지은 '돈의문' 대문인지 세간에서는 신문(新門/새문)이라 하여, 돈의문 안쪽을 ’새문안‘ 또는 ’新門內‘라 불렀다 한다. 오늘날 ’새문안길/新門路‘이란 지명이 붙은 배경이다.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라
- 돈의문박물관마을 -
‘돈의문박물관마을’은 흥화문 광장 옆 골목에서 서울시교육청으로 올라가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안에 있다. 아니 있었다. 들어서면 이발소, 중국음식점, 조그만 술집과 가정집이 올망졸망 붙어 있는 재현(再現) 동네였다. 온동네를 ’박물관‘으로 꾸민 배경과 마을의 역사를 사진과 함께 상세히 내용을 올렸으나 어찌 된 일인지, 작년부터 입구들을 모두 폐쇄해놓았다. 돈의문 부근 재개발로 인해 전면 철거될 예정이던 '새문 안 동네'를 2017년 서울시가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마을 전체를 박물관으로 조성한 후 보존한 동네였는데... 연간 수십억 원에 달하는 운영비 문제, 빈약한 전시 콘텐츠에 대한 관심 부족이 원인이라 한다. 멀리 보면 돈의문 복원 같은 장기 과제와도 관련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어떤 곳이었는지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사진 몇 장 보여드린다.
4발의 총탄, 2개의 탄흔
- 경교장(京橋莊) -
서울시교육청 정문으로 오르는 강북삼성병원 입구를 들여다 보면 병원 입구 안에 한눈에도 오래되고 격조 있는 건물의 옆모습이 보인다. 경교장(京橋莊)이다. 경교장은 일제강점기에 삼성금광(三成金鑛)을 운영한 갑부 '최창학'이 지은 사저이다. 별칭은 죽첨장(竹添莊/일본식 발음 '다케조에조'). 갑신정변 당시 일본 공사이자 정변의 기획자였던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의 이름을 따 붙인 동네 이름이다. 지금의 충정로와 서대문 일대를 가리키는 일본식 지명 죽첨정(竹添町/다케조에마찌)에 있는 저택이라는 의미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조선의 3대 부호'니 '금광왕'이니 하는 별호로 유명한 인물이 친일 행위와 무관할 수는 없는 일. 해방이 되자 최창학은 이 저택을 ' 백범(白凡 金九)'에게 헌납한다. 해방 당시 임시정부는 '미 군정' 당국으로부터 정부로 인정받지 못하고 요인들 모두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터, 갈 곳도 모일 곳도 없던 상황에 놓여 있었다. 결국 김구는 이를 받아들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판공실' 겸 사저로 활용한다. 그 때 건물을 '죽첨장'에서 '경교장'으로 바꿔 불렀다 한다. '경교장(京橋莊)'은 '경교(京橋)' 또는 경구교(京口橋)라 불리는 다리에서 비롯된 지역의 별칭을 빌어온 것이다. 지금의 5호선 전철 서대문역 옆 '적십자병원'과 삼성 강북 병원 일대는 조선 시대에 '경기 감영'이 있던 자리이다. 수도인 '한성부'의 서대문 바로 밖에 경기도 관찰사가 주재하는 경기 감영이 있었던 것이다. 옆으로 인왕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흘렀는데 거기 놓인 다리 -경교 또는 경구교-를 건너야 경기 감영 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던 듯하다. '경교'는 '경기감영교'의 준말이라는 해석이 붙고, '경구교'는 '경기감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다리'라는 해석이 따른다. 모두 틀리지 않아 보인다. 아무튼 '경교장'이라는 이름은 그 다리에서 비롯된 것. 백범이 1949년 암살된 이후, '중화민국 대사관', 6.25 전란 중 '미군 의료진 숙소', 월남 대사관 등으로 쓰이다가 1969년 '고려병원 본관 및 행정동'으로 매각된다. 용도에 따라 내부 구조도 많이 변했으나 백범의 최후 자취에 대한 보존 요구가 커지자 소유주인 '삼성 그룹'은 '삼성강북병원' 소속의 이 건물을 서울시가 위탁 받아 '서울역사박물관'에 의해 관리하도록 양해한다. 안에 들어가 보면 '안두희'가 쏜 네 발의 총탄 중 2발의 흔적이 유리창에 남아 있다. 4발 모두 몸에 맞혔지만, 관통한 2발의 흔적이라 한다. 한편 최창학의 '삼성(三成)광업'과 오늘날의 '삼성(三星)'이 한자는 달라도 한글이 같다는 공통점이 눈길을 끈다.
월암공원으로 가기 위해 서울시교육청 정문을 지나면 서울시민대학과 국립기상박물관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정문 양쪽 기둥에는 ‘국립기상박물관’과 나란히 ‘서울시민대학’ 현판이 붙어 있다.
서울에도 진달래가 피었습니다
- 국립기상박물관 -
국립기상대가 ‘기상청’으로 승격된 후 보라매공원 옆으로 이전한 후에도 ‘국립기상박물관’ 건물과 뜰이 이곳에 남아,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있다. 서울시민대학 앞길을 지나 박물관까지는 조금 긴 언덕이다. 언덕 끄트머리에 있는 계단을 올라서면 고전적인 건물이 보이고 그 안쪽으로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국립기상박물관홈페이지(science.kma.go.kr/museum/)에서 이곳의 약사(略史)를 간추려 보니 1907년 서울 중심지역의 날씨를 측정하기 위하여 설립한 '서울측후소'가 해방 후 '국립중앙관상대'를 거쳐 '기상청'으로 개편되고, 1998년 기상청이 현 보라매공원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그 전, 기상청으로 쓰였던 건물과 시설은 단순히 '기상박물관'으로만 남아 있는 것 아니라 현재도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바로 ‘서울기상관측소’의 역할인데, 기온, 습도, 바람, 강수량, 일사량, 일조량, 증발량, 황사 관측이 그 기능이다. 더불어 계절별 꽃피는 시기, 단풍시기, 첫눈, 첫서리도 여기서 관측한다고.
정리하자면, 해발 86m에 위치한 이곳이 현재도 서울지방의 기온 등 모든 기상활동의 표준이 된다는 말이다.저기 있는 벚나무 표준목의 가지 하나에 세 송이 이상 꽃이 달려야 ”서울에도 벚꽃이 피었습니다“는 뉴스가 나가고, 단풍나무 표준목에 20% 이상 단풍이 들 때, ”서울에도 단풍이 들었습니다“라고 발표할 수 있으니 정말 중요한 장소라 아니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계절관측 표준목’으로 개나리, 진달래 등이 '명패'를 옆에 세워 두고 있다.
- 월암공원 -
국립기상박물관을 에워 싼 한양도성이 깔끔하게 복원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복원도 복원이지만, 주변이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변모했다. 서대문에서 독립문에 이르는 ‘통일로(의주로)’와 이곳 ‘월암공원’ 사이에 들어선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가 시야를 다 가렸기 때문이다. 아파트 짓기 전만 해도 길게 뻗은 안산의 모습과 인왕산이 무악재로 내려가는 자태가 한눈에 들어왔으나 이제는 스카이라인이 온통 아파트 꼭대기층인 것이다. 옛 기상청 울타리를 따라 복원된 한양도성 성벽, 단정히 정비된 '월암공원'과 멋진 산책길이 대신 주어졌다 해도 탁 트였던 시야에 대한 아쉬움을 보상할 수는 없다.
‘월암공원’이란 이름은 스위스대사관 앞 도로를 따라 독립문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우측 높은 바위에 새겨진 ‘月巖洞(월암동)’이란 각자(刻字/새김글씨)에서 유래한다. 인왕산 자락인 이곳도 화강암 지대였을 듯한데, 그 중 밤에 유난히 환하게 빛나는 바위덩어리가 우뚝 서있어서 ‘월암봉(月巖峰)’이라 한 데서 근방을 월암동이라 불렀다는 내용이 표지판에 쓰여 있다. 아파트 단지 공사가 시작되던 2014년 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했으나, 인부들이 ‘월암동’ 각자 바위 주변까지 굴착하는 것을 본 시민들의 신고로 서울시가 공사 중단 명령을 내리는 소란도 있었다 한다. 바위 글씨를 보려면 원래 진행하려던 코스-홍난파 가옥 방향-를 벗어나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성벽 옆 월암공원 입구로 다시 올라와야 한다. 다시 올라와 '구세군 영천교회' 쪽으로 걸어가면 정면에 뾰족한 삼각 지붕의 빨간 벽돌집이 정면을 보고 서 있다. 가까이 가 보면 그 집 앞에는 정면을 주시하는 한 남자의 흉상도 마주할 수 있다. ‘홍난파 가옥’. 홍난파가 죽기 직전까지 6~7년을 살았던 집이다.
'고향의 봄'과 친일 국민 가요
- 홍난파(洪蘭坡) 가옥-
본명은 홍영후(洪永厚), 난파(蘭坡)는 호.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인 화성군 남양읍에서 태어났고, 본관도 남양(南陽 洪씨)이다. 아버지 홍준(洪埻)이 일찍 개화한 기독교인으로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한 새문안교회에서 1892년 세례를 받았고, 언더우드에게 조선어를 가르치며 아펜젤러 등과 공동으로 작업한 한글성서 번역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니 당시 신문물 최고 엘리트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형은 우리나라 최초의 이비인후과 의사이자 세브란스 의전 최초의 한국인 교수라고 기록에 나와 있는 홍석후이다. 홍석후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안이(안과/이비인후과)병원’ 현관 앞 테라스에 그 흉상이 서 있을 정도로 세브란스병원과 의전의 초기 상징적인 인물이다. 홍난파도 한 때 가족들의 권유로 세브란스 의학원에 입학했으나 그만 둔 이력이 있다. 음악의 길에만 전념하면서 일본과 미국 유학을 할 수 있었던 경제적 여유가, 개업의로서 성공한 형의 재력에 힘입은 바 크다는 시각도 있다.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에 들어가 성악과 기악을 모두 공부한 후 바이올린을 전공하여 전습소의 서양악부 교사로 임용되었다. 얼마 후 형의 권유로 세브란스의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나와 일본의 음악 학교로 유학, 본격 음악가의 길로 나선 후 우리나라와 일본을 오가며 독주회와 작곡 발표 활동을 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전문잡지인 ‘음악계’를 발간하기도 하였고 미국에 유학한 후인 1937년 11월 경성중앙방송국 방송관현악단 지휘자로 위촉되었다.
홍난파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놀란 점은 그가 오늘날에도 애창하는 수많은 가곡의 작곡자이자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라는 음악적 경력 외에 다양한 분야에 걸친 만능 예술인이었다는 점이다. 창작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도스토예프스키 원작 ‘가난한 사람들’을 번역한 ‘청춘의 사랑(1923)’과 에밀 졸라 원작의 ‘나나(1924)’를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고 신문과 잡지에 다수의 글과 평론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수필가, 번역문학가요 평론가였다. 자작소설을 연극 대본으로 개작하여 자신이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한 연극인이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던 그가 오늘날 ‘친일인명사전’에 오르게 된 계기는 이광수, 주요한 등 수많은 지식인들이 친일 행태로 돌아서는 계기로 꼽히는 1937년의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이다. ‘수양동우회’는 일제 강점기 계몽과 사회운동을 위해 헌신하던 당대의 지식인들이 두루 참여한 단체였는데 1937년 회원 중 181명이 검거되어 협박과 회유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계몽주의 명망가들이 친일 행적을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 때부터라고 한다. 홍난파 역시 친일 문예 단체인 ‘조선문예회’에 참여하여 친일적 성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친일행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하였으며 침략 전쟁을 미화하는 다수의 자작곡을 발표하기도 하다가 1941년 8월 경성요양원에서 사망한다.
홍난파가 사망하기 전 6~7년 정도를 산 것으로 알려진 이 집이 항일 언론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이끌었던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1872~1909)의 집터였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이 집의 등록문화재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제시되고 있다. 집앞에 있는 흉상은 경성중앙방송국 관현악단의 첫번째 지휘자였던 홍난파의 탄생 70주년을 기념하여 1968년 당시 남산에 있던 KBS방송국에 세웠던 것이다. 방송국이 여의도로 이전할 때 함께 옮겨가긴 하였으나 이후 홍난파의 친일 행적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논란이 일자 가족들이 자진 철거하여 이곳에 옮겨 세웠다 한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고향의 봄’, ‘봄처녀, ’‘봉선화’, ‘퐁당퐁당’, ‘옛동산에 올라’, ‘성불사의 밤’, ‘낮에 나온 반달’, ‘사공의 노래’ 등 지금도 가사 안 보고도 부를 수 있는 가곡들이 들리는 듯하다.
이어서 '인왕산 자락따라 걷고 보고-3'(딜쿠샤 -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 - 인왕산 자락길 - 수성동 계곡 - 통인시장)편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