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해저터널 거쳐 천수만 간월도로

서해안만 따라간 3일의 여행-셋째 날

by 길벗 스토리텔러


돌아가는 날이다. 무리 없이 여유 있는 일정이라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새만금 남북도로를 타고 군산을 거쳐 대천으로 향했다. 대천항 위쪽에 있는 해저터널을 통해 원산도-안면도를-천수만 방조제를 둘러 간월암으로 가는 환상의 바닷길 드라이브를 택한 것이다. 간월암 가는 길로는 네비게이션 지시보다 많이 돌지만, 해저터널을 통한 [대천항~원산도], 이어서 [원산안면대교~안면도 영목항 전망대~천수만 방조제 B지구]로 가는 길은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이다.


- 보령 해저터널 -


해저터널은 다행히 통행료가 없다. 해저터널을 포함한 부산 '가거대교' 통행료를 1만원 지불했던 기억이 있어 각오했었는데, 이곳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국도 77호선’의 일부 구간이며, 민자가 아닌 국가 재정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2021년 12월 개통된 이 도로는 보령군 대천과 태안군 안면도간 기존 도로 [95km에 90분] 소요 시간을[14km/10분]으로 단축시켰다니 주민들은 물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해저터널이라 해서 무슨 수족관처럼 유리를 통해 바다 전망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지상의 터널과 똑같다. 바다 밑인지, 강 밑인지, 흙 밑인지 모르고 금세 7km 구간을 지난다. 환상은 금물.


- 원산안면대교와 영목항 전망대 -


보령과 원산도는 해저로 잇고, 원산도와 안면도는 다리로 이은 것이었다. 2019년 개통된 1.75km의 사장교인 '원산안면대교', 이 다리를 건너면 안면도의 최남단 영목항이다. 다리를 건너는 중 ‘영목항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측 아래가 영목항인데, 전망대는 도로 왼편에 있다. 한번 들러볼까 잠시 고민했으나, 건너편 어디쯤인 간월암에서도 같은 바다를 바라볼 것이므로 그냥 지나가기로 한다. 만약 석양 무렵이었다면 기꺼이 전망대에 올라갔을 것이다. 해당화를 형상화했다는 전망대는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고, 360도 돌아가며 천수만은 물론 서해 바다와 안면도 북쪽까지 모두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서해의 노을을 즐기기에 단연 최적의 장소로 꼽힐만 하다.


도로 주변에나 숲에나 소나무가 많다. 안면도는 좋은 소나무가 참 많은 곳이다. 안면도 소나무는 고려시대부터 궁궐의 목재와 재궁(임금의 관)을 만들기 위해 국가가 엄격히 관리해온 귀중한 소나무로 '안면송(安眠松)'이라 부른다. 자랄수록 가지가 우산처럼 우아하게 펼쳐져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몸매 아름다운 소나무로 인정받는다. 안면대교를 건너면서 일행들에게 이 다리가 있는 지역은 원래 육지로 연결되었던 곳인데 고려 말~조선 초, 사람을 동원해 인공적으로 물길을 냄으로써 안면도가 섬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후부터는 육지와 섬을 배로 오가다가, 1970년 이 다리(안면대교)가 완공되어 다시 연륙(連陸)되었다는 사실까지. 태안 앞바다에서 풍랑에 좌초, 침몰하는 조운선이 워낙 많아, 고려 시대부터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운하를 개통하려던 수차례의 시도가 좌절되자 대안으로 목이 짧은 이 곳 땅을 파내 바닷길을 만든 것이다. 안면대교를 건너자마자 만나는 신온교차로에 ‘판목·안면 운하’ 조형물이 서 있다. 지역에서는 ’세계 최초의 운하’라고 홍보하는 모양인데 세계 최초라는 주장에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col-%EB%B3%B4%EB%A0%B9-%EC%95%88%EB%A9%B4-%EC%98%A5%EA%B2%BD%EC%9D%B4%EB%84%A4.png?type=w1 보령 해저 터널 입구/영목항 전망대/간월도에서 먹은 해물 칼국수


안면도를 벗어나 ‘원청 4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천수만 방조제 B지구를 지나게 된다. 그리고 B지구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간월도다. 그러니까 우리의 경로는 보령 해저터널부터 천수만을 오른쪽에 두고 북상하다가 우회전, 다시 우회전했으므로 천수만을 빙 돌아 간월도에 도착한 셈이다. 간월도는 서산 방조제 A와 B의 중간 기착지이며 연결하는 곳이다. 방조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천수만에 있는 하나의 섬이었다. 교통과 관광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아직 이곳 갯벌에는 작지만 고소하고 맛 좋은 굴이 서식하여 유명한 '서산 어리굴젓'의 생산 및 판매지로도 유명하다. 간월암에 들르기 전 해물칼국수로 점심식사를 했다. 이곳에선 한끼 식사거리로 ‘굴밥’과 ‘해물칼국수’가 대표적인 메뉴인데, 유명한 해물칼국수집이 넓은 공영주차장을 자기집 마당처럼 쓰는 위치에 있어 고민 없이 거기를 택했다. 좋은 입지에다 푸짐한 해물로 손님이 많은 곳이라 작년에도 들러 만족스런 식사를 했던 경험이 있다. 식사 후 차로 1분거리에 있는 간월암 주차장으로 간다. 간월암으로 향하려면 걸어 올라야 했던 동산이 전부 주차장으로 변모해서 이제는 동산도 아니고 주차장이니 전부 게까지 차를 가지고 간다.

col-%EA%B0%84%EC%9B%94%EC%95%941.png?type=w1 간월암 이모저모


간월암(看月庵)은 충남 서산시 부석면에 있는 암자이다. 조선 초 유명한 '무학대사'가 이 곳에서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해서 '볼 간(看), 달 월(月)'을 써서 간월암이라 한단다. 이 암자가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지척이지만 바다를 몇 걸음이나마 건너야 들어갈 수 있는 섬에 있다는 '소문' 때문일 것이다. 섬이라 해야 하나, 바닷가라 해야 하나 사실 애매하긴 하지만 물 속에 들어 있으니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물 위에 뜬 연꽃 형상이라는 의미는 살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바다를 내려다 보는 곳도 아니고, 사람이 사는 섬도 아니고, 절 하나가 전부 차지해도 좁은 이 섬에 절집을 지은 이유가 뭘까. 조선 건국을 전후한 시기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세세한 역사는 모르겠고, 해방 직전 '만공(滿空)선사'가 중창했다는 역사는 간월암이 지금도 충남 예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라는 사실과 닿아 있다. 처음 올 때, 밀물 때는 섬이 되니 못 건너가고 썰물 때라야 들어가는 신비로운 길 어쩌고 해서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밀물 때도 발목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을 불과 몇 걸음이면 건너간다는 사실을 알고 일행들과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여울목에 자갈과 모래를 많이 돋워 놓아 항시 왕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절에서 보니 어쨌든 천수만이 앞마당 처럼 트여 시원하다. 작년 초여름에 왔을 때는 '방생 법회'를 보았다. 바닷물고기 놓아주기에 여기처럼 좋은 곳도 없으리라.


간월암에서 나와 바로 서울로 향했다. 홍성 IC로 가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야 빠르다. 수도권에 16시 이전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하는 것이다. 여행 마지막 귀갓길은 이래서 항상 맘이 바쁘다. 30분 늦게 출발하면 3시간 늦어진다는 교통 지체 현실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다. 간월암에서 빠져 나와 홍성 IC로 가는 쭉 뻗은 첫 도로가 바로 '서산 A지구 방조제'이다. A 방조제는 B 방조제에 비해 5배 정도 길다. '서산 B 지구 방조제'가 '태안'에서 간월암 쪽을 잇는다면 A 지구는 간월암에서 '홍성'을 잇는다. 홍성 IC는 이틀 전 남당리를 경유해 천북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내려섰던 곳이다. 천수만을 거의 한 바퀴 돌아 '완전 정복'하고 돌아가는 느낌이다. '서산 방조제'를 지나면서 '현대 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의 그 유명한 '유조선 공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천수만은 이름 그대로 '얕은 바다(淺水)'가 육지 깊숙이 들어와 있는 내해(內海)이다. 입구나 중간 어디쯤만 막으면 안쪽의 거대한 갯벌을 모두 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간척의 가능성이 높은 곳. 1990년만 해도 우리나라는 산업화를 추구하면서도 주식인 쌀농사를 포기할 수 없는 나라였으니, 바다를 막아 농지를 넓히는 사업이 늘 절실하던 시기였다. '식량 자급'을 '식량 안보'라 표현하기도 할 정도로... 이와 같은 배경에서 정주영 회장이 천수만 바다 안쪽을 방조제로 막아 6,400만 평-여의도의 50배가 넘는- 간척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대규모 기계화 영농의 농업 단지이며, 철새들의 낙원이 된 옥토-'서산 A·B지구 간척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1998년 1,001마리의 소를 싣고 간 트럭까지 통째로 북한에 넘겨준 민족적 이벤트, '소떼 방북(訪北)'의 그 소들도 바로 이 곳에서 키운 것들이었다.


'폐 유조선 공법' 또는'정주영 공법'


이 곳 방조제를 건설할 때의 일화이자 세계적인 화제인 된 정주영 회장의 '유조선 공법'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 같지만, 내용을 정확하게 모르는 분들이 많아 여기 소개한다. 태안에서 간월암으로 갈 때의 방조제 B지구(1.2km)는 상대적으로 구간이 짧고 수심이 얕아 큰 무리 없이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간월암에서 홍성으로 향하는 A지구(6.4km) 공사는 천수만 깊이 들어가는 큰 물길을 가로막는 공사였다. 양 쪽에서 돌을 부어 물막이를 만들어 가운데 쯤에서 연결시켜야 할 공사가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아 애를 태운 것은 마지막 연결 구간 270m였다. 6km이상 양측에서 물을 막아 연결 지점에 접근은 했지만, 마지막 270m로 좁혀진 틈새로 빠져나가는 물살의 속도가 초속 8.2m(시속 30km)나 되니 집채만한 바위를 쏟아부어도 순식간에 휩쓸려 내려가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었다. 더 이상 공사가 진척되지 않을 때, 정회장은 고철로 쓰려고 사둔 '폐 유조선' '워터베이호'를 떠올린다. 길이 322m에 약 32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이었다. 정회장은 양쪽 방조제가 만나기 전 그 270m 구간 안쪽에 바닷물과 모래, 자갈을 채운 '워터베이'를 가라앉혀서 일단 물살을 고요하게 만들고 그 틈을 타서 흙과 바위를 쏟아부음으로써 방조제를 연결하는데 성공했다는 이야기이다.


서산 A 방조제를 건넌 차는 '궁리항'을 오른쪽으로 바라 보다 점차 뒤쪽에 두면서, 홍성 IC로 방향을 튼다. 남당리와 '천북 굴단지'로 갈 때의 길을 거꾸로 가는 것이다.


(3일간의 긴 여정,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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