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다방

by 길벗 스토리텔러

광화문 행 광역버스를 탔다. 오전 11시 조금 넘은 시각, 대여섯 명 승객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앉아 있다. 내가 탄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에 오르는 노인이 계셨다. 다소 불편한 걸음걸이로 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얼핏 보아도 상당히 잘 차려 입은 노인은 여든은 훨씬 넘어 보였다. 내리는 문 가까이 자리를 잡으시자, 버스가 출발했다.


조금 지나 버스 안에서 큰 소리가 울려퍼졌다.

“몸이 안 좋다고? 어떻게 하냐? 모레 만나기로 했는데”


큰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 노인이었다. 친구에게 전화로 모임의 시간과 장소를 알리시는 장면인데, 이것 참. 목소리가 커도 너무 크다. 젊은이 같으면 한소리 바로 얻어 들을 듯한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진다.

“일단 시간, 장소 적어놔 봐. 모레 열두시 대학로 학림다방”

이 분 대단하시다. 대학로의 학림다방에서 약속 잡을 정도면 서울대학교 문리대 출신이신가? 학림다방은 서울대학교가 관악산 아래로 이전하기 전 연건동 캠퍼스 시절 민주화 투쟁 관련 수많은 인물과 사건으로 회자되는 명소이다. 지금도 대학로에 건재한 이 다방이 얼마나 시국 사건과 관계 깊으면 노무현 대통령이 최초로 시국사건 변호를 맡았다는 ‘부림 사건’의 ‘부림’이 ‘부산의 학림’사건이라 이름 지은 것을 줄인 말이겠나. ‘학림’이란 이름도 서울대학교 문리대 축제인 ‘학림제(學林際)’에서 연유했다고 알고 있다. 서울대학교가 이전한 때가 고등학생 시절이니 학림다방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내겐 전설이다.

그런데 ‘학림’은 발음이 어렵다.


“학림다방. 아니 그게 아니고 학림”

“항이 아니고 학이라니까”

“항문의 항이 아니라, 배울 학”

“아니 왜 이렇게 못 알아듣는거야?”

“천천히 다시 들어봐. 배울 학, 수풀 림”

“정말 답답해 미치겠군”

점점 더 커지다가 악쓰는 수준의 목청에 이르자 정작 미쳐버릴 사람은 버스 안의 승객들이다. 이쯤 되면 버스 기사가 나서서 한 마디 할만도 한데, 상대가 워낙 고령인데다 뭐라 한들 주입될 상황도 아니다. 앞쪽 승객들은 누군가 하며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키득거리는 커플도 있다. 백미러에 기사님의 눈이 번득이지만, 노인이 의식할 리도 없다.

“배울 학, 수풀 림”을 두어 번 더 외치시다가

“아이고 귀가 절벽이네” 하시며 포기하는 눈치다.


“알았지? 못 나와도 알고는 있어야지”

대충 마무리 수순임이 분명하다. 타의에 의해 대화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승객들이 그 불편한 상황을 벗어날 순간이 마침내 온 것이다.

들리지 않으니 모르지만 아마도, 대화가 끝난 것이 아니라 저쪽의 말씀이 길어진 모양이다. 잠시 조용하더니 다시 이쪽 노인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이어진다.

“모레 투석받으러 가야 한다구?”

“어쩌냐? 몸이 그래서”

처음부터 모레 투석 받는다고 말씀하셨으면 어차피 못 나오실테니, ‘학림’ 그 어려운 발음을 몇 차례 악써가며 일러줄 필요도 없었을텐데. 허무개그 다름 아닌 결말이다.

통화가 종료되고, 독백이 이어진다.

“세월 앞에 장사 없어. 늙어가니 몸이 안 아플 수 없지. 이제 몇 안 남았네”

소용돌이 지나 잔잔해진 물처럼 버스 안이 일순 고요해졌다. 소용돌이에 허우적대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터, 마침내 찾아온 정적 속에서 승객들은 무슨 생각들을 할까. 생로병사라는 화두로 사람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이도 있을 테고, “저 양반 또 다른 영감한테도 연락 돌리는 거 아냐?”하는 불편한 심사를 가진 이도 있으리라.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노인이 한편 부럽기도 하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 것이다. 거동이 불편해도 노인이 대중교통으로 일산에서 광화문이며 대학로까지 점심 드시러 외출하신다는 것(그것도 한 주일에 두 차례나. 오늘하고 모레)만으로도 대단하다. 고령이지만 외모며 복장이 추레하지 않다는 점도 그렇다.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 놔두고 3,000원 가까운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없지 않아 보여 좋다. 주책 없긴 해도, 저 연세에 외롭거나 불쌍해 보이지 않아보여서 부럽다는 말이다.

공공장소에서 양식 없는 사람 보면 입바르게 까칠한 소리 하는 사람 많은 세상에 승객들과 기사의 인내도 고마운 일이다. 아마 연세(年歲) 높으신 어른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인내일 것이다.‘나이에 대한 '대접’이 아니라 ‘나이에 대한 '이해’.

버스에서 내릴 때가지 이런저런 상념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에는 내 부모님을 떠올렸는데, 이제는 나를 떠올리고 있다. 어느덧 저 노인에 나를 치환해 사고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나이가 된 것이다. 나이 드는 것이 가슴 아리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순히 늙는 것이 슬퍼서가 아니라, 남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 때문 아닐까. 자식을 포함해 누구에게든 불편하지 않은 사람으로 늙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 상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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