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강공원 당산철교 아래서 선유도 방향으로 걷다가 ‘미류나무 비슷한’ 나무를 발견했다. 예전에는 흔했는데 요즘은 좀체 눈에 뜨이지 않아서 그게 ‘미류나무’라는 확신도 없었다. 단일 수종이 쭉 이어지지도 않았고, 기껏해야 수십 m 정도 늘어섰다가 끊어져 다른 수종과 대체되기를 반복하는 강변 풍경의 일부였다. 훗날 당산철교에서 대방동 방향으로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따라 한 200m쯤 이어지는 ‘미류나무’길을 걸었고, 한강 남쪽 마포대교 아래서 양화대교 아래 절두산까지 산책할 때에도 수십m 이어지다 끊어지다, 같은 나무 그늘 아래를 걸어보기도 했다. 이 나무를 드문드문이나마 인위적으로 심으려는 한강공원 관리 차원의 어떤 의도가 있지 읺나 여겨지기도 했다. 내 짐작이 맞나, ‘포털’에서 검색하다 의미 있는 신문 기사를 발견했다. 2019년 7월 30일 자 한국건설신문 (http://www.conslove.co.kr)기사인데, 요약하자면 광나루에서 강서한강공원까지 약 100리(약40km)에 걸쳐 "한강 미루나무 백리길“을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미루나무 약 1천800주를 한강변 따라 식재하여, 마치 고흐나 모네의 명작 속의 포플러 숲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고흐의 작품 속 나무는 사이프러스, 모네의 그림 속 그 것은 포플러의 일종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튼 이도저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나무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다. 한편 어린 시절 추억 속 나무를 되살린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 구름 걸려 있네/솔바람이 몰고 와서 살짝 걸쳐놓고 갔어요/뭉게구름 흰 구름은 마음씨가 좋은가봐/솔바람이 부는 대로 어디든지 흘러 간대요” 아직까지 동요로 불리워지고 있는 ’흰구름‘이란 노래 가사이다. ‘미류나무’가 학교 운동장 주변 철봉대 위로 길게 둘러선 풍경 그리고 파란 하늘엔 몇 조각 구름. 그런 장면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노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동요는 당시 음악시간에 배운 동요 중에서도 비유컨대 명곡의 위상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만큼 아이들이 좋아해 많이 불렀었고 요즘도 '누가 누가 잘하나' 비슷한 동요 경연 프로그램에서 가끔 듣게 되니 하는 말이다. ‘도도레미도 미미파솔미 솔라시도시라 솔파미레’로 계명(階名/계이름)까지 생생하면서도 막상 이 노래의 제목이 '미류나무'가 아니라 '흰구름'이라는 사실은 좀 새로웠다.
동요를 매개로 한 유년기의 아득한 추억 말고 우리 세대라면 모두 금세 기억할만한 큰 사건에 ‘미류나무’가 등장한다. 이른바 ‘작전명 폴 버니언(Operation Paul Bunyan)’. 사건 자체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분들조차도 작전명까지는 언뜻 떠올리지 못할 수 있겠다. 그러나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남북 대치가 첨예하던 시절,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미군을 도끼와 몽둥이로 때려죽임으로써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일촉즉발의 순간까지 닥쳤으나, 남한과 미국의 초강경 대응 앞에 북한이 꼬리를 내림으로써 전쟁의 위험을 피한 일대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우리측 특정 초소의 시선을 가리는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제거하는 일이 그 발단이었다. 그 때만 해도 남북의 초소들이 여기저기 혼재해 있는 문자그대로 ‘공동 경비구역’이었이니, 곁에서 북한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이는 일상적인 작업으로 생각하고 UN사 지휘부는 인력을 투입하였다. 예상 밖으로 북한군이 이의를 제기하자 충돌을 피하고자 일단 물러난 UN군 측이 다음날 잎이 무성한 가지만 쳐내기로 방향을 틀어 실무 노무자, UN군 장교와 병사, 한국군 장병 등 모두 11명의 병사들이 작업 감독에 나섰다. 그런데 북한군 장병이 나타나 이의를 제기하는 척하다가 급기야 둔기와 도끼로 집단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UN군 중대장, 소대장이 모두 사망하고 한국군 포함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한 이 사건을 두고 한국과 미국의 군통수권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군 수뇌부는 전쟁을 불사하고 UN사령부도 모르게 극비의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준비했고, 미국인 장교 2명의 목숨을 잃은 백악관도 강력한 대응을 지시한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전투준비태세를 명령하고, 미드웨이 항공모함,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전투기와 폭격기를 출격시켜 한반도 상공을 선회하게 하는 가운데 공동경비구역 내 문제의 나무를 베어낸 사건이 바로 ‘폴 버니언 작전(Operation Paul Bunyan)’이다. ‘폴 버니언’은 미국의 민담(民譚)이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거구의 나뭇꾼 이름으로 동화 그림책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UN군도 모르게 준비한 한국군만의 작전이 어마어마했다. 나무를 벨 때, 호위 차 동원된 한국군 특공대 장병 64명이 옷 속에 총기를 분해하여 몰래 감추고 들어가서 일부러 북한군을 자극하고는, 덤벼든다면 총격을 가하고 전면전으로 내달으려 한 것이다. 한국군 특공대원들이 절대 총기 소지를 하지 말라는 유엔군 총사령관 지시를 어겨가며, 특공대를 선발할 때 외동아들과 장남은 제외한 사실만 봐도 어떤 각오로 임했는지 알 수 있다. 겁을 먹은 북한군이 반항은커녕 모두 도망하여 북한군 초소를 닥치는 대로 때려부수며 분풀이하고, 정치적으로는 김일성이 낮은 자세로 사과함으로써 일단락된 사건이었다. 이때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의 어록이 한동안 유행했었다. “미친 개에는 몽둥이가 약이다.”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게 했던 잎이 무성했던 나무, 결국 미국의 전설 속 나뭇꾼이 베어버린 그 나무가 바로 ‘미류나무’였다.
같은 나무가 내 관심을 끈 또 다른 화제가 최근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미류나무’가 아니라 ‘미루나무’였으니, 같은 나무이되 그간 나무 이름이 바뀐 까닭이다. 배경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다. 1923년 ‘서대문감옥’에서 ‘서대문형무소’로 개칭하고 시설을 대대적으로 증개축하면서 심었다는 ‘미루나무’ 한 그루가 지붕 없이 붉은 벽돌에 싸인 교수형장 목조 건물 곁에 서 있었다. ‘독립공원’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이에 난 계단으로 무악산(안산)을 오르는 길목이니, 지나는 이들은 교수형장이라는 섬뜩한 시설에 눈길을 주게 되는데, 바로 거기 서 있던 나무였다. 사형 언도를 받은 독립운동가들이 형장으로 들어서기 전 끌어안고 통곡하여 ‘통곡의 나무’라고 이름 붙였다는 서사(敍事)까지 붙어 독립 운동가들의 비장한 최후를 상징하는 나무로 묵묵히 서 있었다.
2021년 봄, 독립광장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주변 문화탐방을 마치고 ‘안산자락길’에 오르다 보니 “통곡의 미루나무”가 땅 위에 쓰러져 있었다. 검색해 보니, 2020년 10월 태풍에 쓰러졌으며, 그 자리에 그대로 보존처리하여 독립정신의 상징인 '통곡의 나무' 스토리를 알리기로 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었다. 100년을 조금 덜 채우고 쓰러진 나무지만 다른 미루나무의 자연 평균 수명보다 오래 살았다고 하며, 쓰러진 후 살펴보니 줄기 속이 다 썩은 상태였다고 한다.
형무소측이 제공한 스토리텔링에는 원래 사형장을 만들면서 나란히 두 그루의 미루나무를 심었다고 나와 있다. 훗날 목조 건물인 교수형장을 벽돌담으로 에워쌀 때 두 그루는 안팎으로 분리되었고 3년 차이로 죽었다고 한다. 2017년 8월 15일, 광복절날 먼저 죽은 담 안의 미루나무와 2020년 10월 죽은 담 밖 나무의 수명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생육 상태엔 큰 차이가 있었다. 내 기억에도 담 안에서 자란 나무는 담장 위로 솟은 모습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생육이 불량했다. 한날 심어졌지만, 교수형장 담 안쪽에 갇힌 나무의 생육이 지극히 나빴다는 사실을 자유와 속박, 열린 세상과 닫힌 세상에 놓인 처지의 차이로 비약시킨 잡글들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사형수가 저 나무를 끌어안았는지도 모르겠지만, 사형수들이 모두 독립운동가였을까. 통계도 검증도 없이 독립운동가들의 비장한 최후를 연상시키기 위해 지어낸 가짜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나의 심사는 전부터 많이 꼬여 있던 터였다.
이 스토리는 최근 한 저널리스트가 사실 관련 의문을 제기하면서 반전을 맞이했다. “형장에 끌려가는 독립투사들이 부둥켜안고 통곡했다’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형장 옆 ‘통곡의 나무’는 해방 이후 심은 나무임이 밝혀졌다.”로 시작되는 기사엔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현지 사진까지 증거로 제시되었다. ‘독립투사의 한이 서린 나무’ 스토리는 실체 없는 괴담 수준의 창작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상식적이지도 않고 믿기지도 않는 과도하고 유치한 창작스토리를 가짜 역사로 둔갑시키는 방송이나 홍보를 혐오하던 나의 심사가 통쾌해지는 순간이었다.
글 속에서 ‘미류나무‘와 ’미루나무‘는 당시 표준어에 맞춰 표기한 이름으로 따옴표 안에 넣었으니 오류 시비는 없으리라 믿는다. 미국에서 ’들어온‘ 아니 ’들여온‘ 이 나무는 도입 당시 미국의 버드나무라는 의미로 ’버들 류(柳)‘자를 붙여 '미류(美柳)나무'라 이름 붙였다고 들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한자어 '미류(美柳)-'에서 온 말임에는 틀림없으나 복모음을 단순화하여 1988년 ’미루나무‘로 개칭했단다. 나무의 개명 이력까지 따져보았으니, 마지막은 동요 '흰구름'의 노랫말이자 동시(童詩)를 쓰신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맺을까 한다. 그러기 위해 노랫말 아닌 ’동시‘를 다시 적는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 구름 걸려 있네/솔바람이 몰고 와서 살짝 걸쳐놓고 갔어요//뭉게구름 흰 구름은 마음씨가 좋은가봐/솔바람이 부는 대로 어디든지 흘러간대요”
외국곡에서 곡조를 차용했다는 이 동요의 노랫말이 박목월 선생의 동시라 알려주면 놀라는 분들이 많다. '문장'지의 추천으로 등단(1939), '청록집' 발간(1946)보다 훨씬 이전인 계성중학교 재학 중(1933) 잡지사 현상모집에 동시가 당선되어 일찌감치 선생이 아동문학가로 활동하였다는 사실은 아는 이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를 리 없는 동요 '송아지'도 그의 동시에 곡을 붙인 것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 ' 청록파 시인'과 '윤사월', '나그네' 같은 교과서 수록 작품 분석, 대시인의 시적 경향에 집중한 입시용 국어 수업을 받았으니, 동시를 쓰셨던 경력과 그 작품은 주목 대상이 아니었을 법도 하다. 얼마 전 193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목월선생이 지었으나 발표하지 않은 시 중 166편을 선별해 세상에 공개했다는 뉴스가 떠들썩했다. 아드님이 유명한 국문학과 교수님이셨으니, 그분을 중심으로 많은 제자와 문학인들이 고민과 숙의(熟議)를 거쳐 추렸다고 한다. 대체로 2024년 3월 24일자 여러 신문에 기사화된 내용이다. 그 중 또 얼마나 토속적이고, 정서적인 작품이 포함되어 있을까 궁금하지만 아직 읽어볼 기회는 얻지 못했다.
지난 8월말, 경주 불국사에서 토함산으로 오르는 도로 한편에서 ’동리목월문학관‘이라는 표지판을 보았다.경주 출신인 소설가 김동리 선생과 시인 박목월 선생을 함께 기리는 문학관인가 보다, 짐작만 하며 지나치는데 목월 선생의 유작 발굴 뉴스와 함께 '미류나무 꼭대기'가 떠올랐다. 어릴 때 추억을 어떤 장면이 그려질 정도의 구체적인 정서로 심어준 선생께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경주를 또 갈 기회가 있다면 문학관에 꼭 들러 봐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한강 미루나무 백리길“이 완성되면 광나루에서 강서한강공원까지 걸을 날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