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래진 일기장이 건네는 응원
서랍 깊숙이 색은 살짝 바랜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문득 종이 위를 부유하는 과거의 내가 낯설게 다가왔다.
당시엔 무엇에 그리도 열정적이고, 방대한 계획을 세웠으며, 무얼 하며 불안하고 행복했는지,
또 무엇이 그토록 애틋했는지.
일기 속 그는 의미 없는 고민들을 치열하게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의 시점으로 보자면,
그 고민들은 참으로 애달프다.
'결국 다 이렇게 될 텐데...' 하는 마음이 들어 시간을 거슬러 그에게 달려가고 싶어진다.
너무 설레발치지 말라고, 제발 그 회사는 가지 말라고, 힘들 때 버티는 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까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싶은 걸 고민하고 주저할 시간에 일단 하라고.
너는 생각보다 그걸 더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가 얼마나 고민에 시간을 낭비할지 알기에,
어떻게든 타임머신 임상실험이라도 참가해 과거로 날아가 충고를 건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내 문장 끝에 맺힌 그의 진심을 보며 피식,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매 순간 서툴지만 최선의 선택을
해내며 버텨온 그 이가,
결국 지금의 나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서.
서랍 속 '낡은 고민'들은 시간이 흐르며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흉터로, 누군가에게는 훈장으로,
혹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먼지로.
문득 알았다. 지금 내 새 일기장을 빼곡히 채운 이 막막한 고민들 역시,
언젠가는 반드시 어떻게든 매듭지어진 '낡은 고민'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일기장에 삐뚤빼뚤하게 못나게 적어 내려가던 글씨를 다시 바르게 고쳐 잡아 보았다.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를 지탱해 주었듯,
오늘의 나 또한 미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록이 되기를 바라며.
낡은 고민은 결국,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응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