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인간’의 바다 나가기
딱히 내 의지는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등에 메어진 책가방에 등 떠밀리듯 학교로 보내졌고, 남들 다 간다는 말에 휩쓸려 대학 원서를 썼다. 취업이 잘 된다는 전공을 선택해 운 좋게 복지 좋다는 대기업에 들어왔을 때,
나는 비로소 어른의 궤도에 진입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선 어른의 세계는 난해했다.
매일 밤낮 없는 야근은 일상이 되었고,
자기 자식만 귀하게 여기며 남의 집 귀한 자식 귀한 줄은 모르는 팀장 놈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열심히 일하는 ‘척’ 연기를 하고,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입술 위에 올리며 영혼을 깎아 먹는 매일.
문득 퇴근길 지하철 차창에
초점 없는 눈동자에 목은 인사를 하듯이 구부러진
거북인간이 비쳤다.
이게 정말 내가 그토록 되고 싶던 어른의 모습일까.
이게 어른이라면, 이렇게 안 살았지.
누군가 정해놓은 정답지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정작 내가 어떤 색의 꿈을 꾸던 아이였는지는 잊어버린 지 오래다.
‘왜 진로 고민은 직장 안에서
가장 심오하게 하게 되는 걸까?‘
어른이라는 이름표 뒤에 숨겨진 이 비겁하고도 치열한 생존 게임을, 우리는 왜 '성장'이라 불러야 하는지 자꾸만 되묻게 된다.
지극히 평범한 하루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던
퇴근길에서 결심했다.
타인의 속도에 맞추느라 헐떡였던 걸음을 멈추고,
조금은 느리더라도 '나다운 어른'의 길을
다시 찾아보겠노라고.
남들보다 느리고 비교되어도 괜찮다.
적어도 마음에도 없는 칭찬으로 내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는 가치 있을 것이니.
그렇다면 ‘나다운 어른’에 뭐가 있을까.
책상 위에 사표를 툭 던지고 미련 없이 문을 나서는 것? 아니면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에 품어왔던 낯선 나라의 언어를 배우러 훌쩍 떠나는 것?
어쩌면 나다운 어른이 된다는 건, 거창한 반란 같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타인이 쥐여준 정답지를 찢어버리고, 내가 직접 고른 오답이라도 기꺼이 정답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비록 그 나라에 가서 단어 하나를 외우는 데
하루가 꼬박 걸릴지라도,
그건 팀장의 비위를 맞추던 야근의 시간보다
훨씬 더 밀도 높은 내 삶의 조각들일 테니까.
나는 이제 사표라는 종이 한 장의 무게보다,
내 꿈을 향해 끊어낸 비행기 티켓 한 장의
무게를 더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