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용'들을 위한 변명 - 1

한·미·일 입시 잔혹사와 '능력주의'라는 거짓말

by Gildong

1. 그 풋풋한 로맨스가 내게는 '잔혹 동화'로 보였다


담벼락 하나가 갈라놓은 두 개의 세계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재생 버튼을 눌렀던 애니메이션, <향기로운 꽃은 늠름하게 핀다>는 첫 장면부터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흩날리는 벚꽃, 수채화처럼 맑은 작화, 그리고 풋풋한 소년 소녀의 첫 만남. 모든 것이 완벽한 하이틴 로맨스의 정석이었다.


이야기의 설정은 이렇다. 명문 여고인 '키쿄 학원'과, 그 바로 옆에 위치한 소위 꼴통 남학교 '치도리 고교'.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계에 살던 두 남녀가 서로의 편견을 허물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나는 이 아름다운 로맨스에 취해 있다가, 어느 순간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주인공의 친구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내뱉은 대사 한 줄 때문이었다.


"졸업하면 평생 엮일 일 없는 인종들이니까."


그 순간, 화면 속의 핑크빛 벚꽃이 잿빛 현실로 변하는 기분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그림체 뒤에 숨겨진, 계급과 단절에 관한 잔혹 동화였다.


낭만 뒤에 숨겨진 신분증, 편차치(偏差値)


일본 사회에는 '편차치'라는 독특한 숫자가 존재한다. 한국의 수능 표준점수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위상은 훨씬 더 견고하고 잔인하다. 일본에서 편차치는 단순한 성적표가 아니다. 그것은 학생이 입을 교복을 결정하고, 어울릴 친구를 거르고, 나아가 평생의 직업과 배우자까지 결정하는 '신분증'이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편차치 70의 여학생들과 편차치 40의 남학생들은 서로를 '다른 인종'이라 부른다. 물리적 거리는 1미터도 안 되는 담벼락 하나 차이인데, 심리적 거리는 지구와 달만큼 멀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아이들의 태도다. 그들은 이 부당한 차별에 대해 화염병을 들고 저항하지 않는다. 대신 "어쩔 수 없다(仕方がない)"며 씁쓸하게 웃는다. 자신의 편차치를 알게 된 순간, 그들은 분노하는 법 대신 체념하는 법을 먼저 배운 것이다. "나 같은 40점짜리 인간이 70점짜리 세계를 넘보는 건 욕심이야"라고 스스로를 검열하면서.


그들의 체념 섞인 뒷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창밖을 보았다. 그리고 소름 끼치게도 낯익은 풍경 하나를 발견했다. 과연 저 체념이 일본만의 이야기일까?


팔로알토의 담벼락, 그리고 대치동의 성벽


시선을 돌려 태평양 건너 미국을 보자. 세계 혁신의 심장부라 불리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그곳에는 '팔로알토(Palo Alto)''이스트 팔로알토'가 있다. 이름은 쌍둥이 같지만, 고작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값은 3배 이상, 아이들의 학력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다. '아메리칸 드림'의 본고장이라는 그곳 아이들 역시 보이지 않는 '자본의 담벼락'에 갇혀 있다.


다시 시선을 돌려 여기, 대한민국을 보자. 우리에겐 '대치동'이라는 거대한 성벽이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멸종 위기종이 되어버린 나라.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수능 점수와 정확히 비례한다는 통계가 매년 뉴스를 장식하는 나라.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우리는 일본처럼 순응하지도, 미국처럼 쿨하지도 못한 채 그저 뜨겁게 절망하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단어는 단순한 엄살이 아니다. 그것은 사다리가 걷어차인 세대가 지르는 비명이다.


사라진 용들을 위한 변명


이 글은 애니메이션 리뷰가 아니다. 이것은 사라진 용들을 위한 변명이자, 고장 난 사다리 아래서 "내가 부족한 탓"이라며 자책하는 당신을 위한 변론서다.


일본의 '순응', 미국의 '오만', 그리고 한국의 '분노'. 3개국의 교실을 비교하며 나는 묻고 싶다. 과연 우리가 믿어온 '노력'과 '공정'은 진짜였는가? 아니면, 우리를 무한 경쟁의 쳇바퀴에 가두기 위한 거대한 거짓말이었는가.


지금부터 그 아름다운 잔혹 동화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시 써보려 한다. 우리가 벽을 넘지 못한다면, 벽 아래서 어떻게 늠름하게 피어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다음 글] 2. '편차치'라는 계급장: 학교 이름이 곧 DNA가 되는 사회

"너는 70점짜리 인간, 나는 40점짜리 인간." 일본의 청춘들이 분노 대신 체념을 선택한 이유, 보이지 않는 신분증 '편차치'의 실체를 파헤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