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용'들을 위한 변명 - 4

한·미·일 입시 잔혹사와 '능력주의'라는 거짓말

by Gildong

4.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미국이 한국보다 용 나기 힘든 이유


일본의 청춘들이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숙일 때, 우리는 흔히 미국을 대안으로 떠올린다.


'기회의 땅', '아메리칸 드림'. 출신 성분이 아니라 오직 실력만 있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그 믿음.


하지만 환상을 걷어내고 들여다본 미국의 교실은, 한국보다 더 잔인하고 일본보다 더 견고한 '자본의 성'이었다.


두 도시 이야기: 길 하나 건넜을 뿐인데


세계 혁신의 심장부라 불리는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그곳에는 '팔로알토(Palo Alto)''이스트 팔로알토(East Palo Alto)'라는 두 마을이 있다. 이름은 비슷하고 차로 고작 15분 거리지만, 두 곳은 완전히 다른 행성이다.


실리콘밸리의 교육 격차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팔로알토의 집값 중간값은 약 358만 달러(50억 원)에 달한다. 반면 이스트 팔로알토는 100만 달러(14억 원) 수준이다.


물론 14억 원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길 하나 사이에 집값 격차가 3.5배나 벌어진다.


이 집값의 차이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팔로알토의 명문 '건 하이스쿨(Gunn High School)'은 미국 전역 랭킹 3위에 빛나는 A+ 등급 학교다. 졸업생들은 자연스럽게 UCLA, UC 버클리 같은 명문대로 진학한다.


반면 이스트 팔로알토의 고등학교는 B등급에 머물며, 수학 능숙도에서 처참한 격차(82% vs 5%)를 보인다.


대학 입시의 결정타인 SAT 점수는 어떨까?


건 하이스쿨 평균 1240점 vs 이스트 팔로알토 960점.


이미 출발선에서 승부는 끝나 있었다.


공립학교가 비즈니스가 될 때


한국 독자들은 의아할 것이다. "사립학교도 아니고 공립학교(Public School)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지?"


바로 여기에 미국 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함정이 있다.


한국은 공립학교 예산을 정부가 비교적 균등하게 배분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미국 공립학교의 운영비는 대부분 '해당 지역의 재산세(Property Tax)'로 충당된다.


즉, 비싼 집에 사는 동네는 세금이 많이 걷히고, 그 돈은 고스란히 그 동네 학교로 들어간다.


팔로알토의 학교는 풍부한 예산으로 연봉 1억 7천만 원짜리 베테랑 교사를 모셔오고, 최첨단 시설과 다양한 AP(대학 선이수) 과목을 개설한다.


반면 가난한 동네 학교는 예산 부족으로 경험 적은 초임 교사들이 거쳐 가는 정거장이 된다.


한국의 '대치동'은 비싼 학원비를 낼 능력이 있어야 진입할 수 있지만, 미국의 학군은 수십억 원짜리 집을 살 능력이 없으면 아예 공교육의 혜택조차 누릴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입장료가 비싼 테마파크'다.


'개천 용'은 통계적으로 사망했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는 종종 빈민가(Ghetto)에서 농구 하나로, 랩 하나로 성공하는 흑인 소년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 극적인 서사에 열광하며 "미국은 역시 기회의 땅이야"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통계는 냉정하다. 미국은 한국보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훨씬 더 가파르게 끊어져 있다.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의 SAT 점수가 비례해서 올라간다는 건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심지어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대놓고 '레거시(Legacy)'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부모가 그 대학 출신이면 자녀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다. 한국 같으면 당장 광화문에서 촛불 시위가 일어날 일이, 그곳에서는 합법적으로 벌어진다.


일본 아이들은 '편차치'라는 성적표 앞에서 좌절했다. 미국 아이들은 '집값'이라는 청구서 앞에서 좌절한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이 시스템의 승리자들이다.


부모의 재력으로 좋은 학군에서, 좋은 교사에게 배우고, 부모의 인맥으로 추천서를 받아 명문대에 간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건 다 내 능력으로 이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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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재능은 내 것이 아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경고하는 '공정하다는 착각'. 승자의 오만함이 어떻게 사회를 망가뜨리는지 파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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