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입시 잔혹사와 '능력주의'라는 거짓말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를 강타한 단어가 있다. '헬조선(Hell Joseon)'.
기성세대는 이 단어를 혐오한다. "너희가 전쟁을 겪어봤어? 보릿고개를 알아? 스마트폰 쓰고 스타벅스 커피 마시는 세대가 지옥 타령이라니, 배가 불렀구나."
하지만 청년들이 말하는 '지옥'은 절대적 빈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희망의 거세'에 대한 이야기다.
노력하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그 '내일'이 삭제된 상태를 그들은 지옥이라 부른다.
단군 이래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입을 모아 경고한다. 지금의 2030 세대는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이것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차가운 통계가 가리키는 예정된 미래다.
부모 세대(586 세대, 베이비부머)는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 있었다.
대학만 나오면 기업들이 앞다퉈 모셔갔고, 은행 이자는 10%가 넘었으며, 월급을 모아 산 아파트는 몇 년 뒤 몇 배로 뛰었다.
그들에게 '노력'은 곧 '보상'이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콜라가 나오듯,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이 정직하게 비례하는 시대를 살았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이 마주한 성적표는 다르다.
경제 성장률은 1~2%대로 곤두박질쳤고, 월급이 오르는 속도보다 자산 가치가 오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아무리 '노오력'을 해서 스펙을 쌓아도, 부모 세대가 누렸던 중산층의 삶(서울 자가 아파트, 자가용, 4인 가족의 여유)을 재현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이 났다. 지금은 개천의 물이 말라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개천 입장료(집값, 사교육비)가 너무 비싸서 들어갈 수도 없다.
상대적 박탈감: "나만 뒤처진 것 같아"
"그래도 옛날보단 살기 좋잖아?"라는 반박은 번지수가 틀렸다.
인간의 불행은 절대적 결핍보다 상대적 박탈감에서 온다.
SNS를 켜면 세상은 온통 성공한 사람들뿐이다. 코인으로 대박 난 친구, 부모 잘 만나 명품을 두른 인플루언서들이 넘쳐난다.
일본 청년들이 아예 욕망을 버리고(사토리) 방으로 들어갔다면, 한국 청년들은 욕망을 버리지 못한 채 그 격차를 눈으로 확인하며 매일 고문당한다.
부모님은 말한다. "눈을 낮춰라."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선진국 시민으로 자라온 그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는 건 생존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다.
결국 그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N포 세대).
이것은 파업이다. 희망 없는 사회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물학적 파업이다.
'노오력'의 배신
이 지점에서 세대 갈등은 폭발한다.
성취를 경험해 본 기성세대는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라고 혀를 찬다. 그들은 자신이 이룬 부가 오로지 자신의 땀방울 덕분이라 믿는다. (앞서 본 미국 엘리트의 오만함과 닮았다.)
반면 청년들은 그 '성공 신화'가 시대적 행운(고성장) 덕분이었음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기성세대의 조언을 '꼰대질'이라 부르며 귀를 닫는다.
"당신들이 걷어찬 사다리 아래서, 우리보고 올라오라고 소리치지 마세요."
일본은 '순응'했다. "어쩔 수 없지." 미국은 '착각'했다. "난 능력 있어서 부자야." 한국은 '분노'하고 있다. "이건 사기야! 룰이 잘못됐어!"
이 분노는 어디로 향하는가?
안타깝게도 시스템을 바꾸는 혁명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혐오로 변질되었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지방은 서울을, 흙수저는 금수저를 물어뜯는다.
다음 화에서는 이 처참한 아귀다툼의 현장, 즉 사다리가 끊어진 진짜 원인 3가지(돈, 인프라, 기득권)를 해부해 보겠다.
[다음 글] 8. 개천은 말랐고, 용은 멸종했다: 통계가 증명하는 '노오력'의 배신
누가 그 많던 개천 물을 다 퍼냈을까? 용을 멸종시킨 3가지 주범(돈, 인프라, 기득권)이 만든 잔혹한 트라이앵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