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입시 잔혹사와 '능력주의'라는 거짓말
"개천에서 용 난다."
한때 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가장 강력한 신화였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고시 패스해서 판사가 되고, 시장통 국밥집 딸이 의사가 되는 이야기. 우리는 그 이야기를 사랑했다.
그것은 지금 내가 비록 시궁창에 있어도, 노력만 하면 언젠가 하늘로 승천할 수 있다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 대한민국에서 이 속담은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개천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곳엔 용은커녕 미꾸라지 한 마리 살 수 없을 만큼 물이 말라버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그 많던 물을 다 퍼냈을까? 용을 멸종시킨 주범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주범: 돈 (자본이라는 입장권)
과거의 성공 방정식은 '재능 + 노력 = 성공'이었다.
돈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보조적 수단이었다. 헝그리 정신이 오히려 성공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방정식은 바뀌었다.
'재능 × 돈 = 실력'
돈이 없으면 재능은 발굴조차 되지 않는다.
예체능은 말할 것도 없고, 순수 공부의 영역인 고시나 수능조차 마찬가지다. 서울대생의 절반 이상이 소득 상위 20% 가정 출신이라는 통계는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돈은 단순히 좋은 학원을 보내는 데만 쓰이지 않는다. 돈은 '실패할 시간'을 산다.
부유한 집 아이는 몇 번이고 재수, 삼수를 하며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한 집 아이는 단 한 번의 실패로 인생의 경로가 영원히 꺾인다.
"돈 없으면 재능도 없다"는 잔인한 말은, 자본이 성공의 '입장권'이 되어버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두 번째 주범: 인프라 (공간이라는 신분증)
앞서 미국의 팔로알토 이야기를 했지만, 한국의 '지방 소멸'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과거에는 지방 명문고가 존재했고, 지방 국립대가 서울 명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인프라는 전국에 어느 정도 고르게 퍼져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모든 교육, 문화, 정보 인프라가 서울, 그것도 강남과 일부 특구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지방 소도시에는 '일타 강사'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입시 학원조차 찾기 힘들다. 공부할 분위기, 입시 정보, 경쟁하는 또래 집단 자체가 사라졌다.
이제 사는 곳(거주지)은 단순한 주소가 아니다. 그 자체가 스펙이자 신분증이다.
서울행 티켓을 끊지 못한 지방의 아이들은 출발선에서부터 이미 수십 미터 뒤처진 채 레이스를 시작한다.
이것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단지 '잘못된 곳'에서 태어난 죄다.
세 번째 주범: 기득권 (그들만의 리그)
가장 분노스러운 주범은 바로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들', 즉 기득권이다.
개천에서 용이 되어 승천한 그들은, 자신이 올라온 뒤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그들은 사법시험을 없애고 로스쿨을 만들었고, 수능 비중을 줄이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늘렸다.
표면적인 이유는 '다양한 재능 선발'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복잡해진 입시 제도는 '정보력'과 '컨설팅'을 살 수 있는 부유층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판이 되었다.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재력), 할아버지의 재산이 입시의 3요소라는 우스갯소리는 현실이다. 부모가 교수라서, 고위직이라서 알음알음 만들어지는 스펙들.
룰은 복잡해졌고, 심판은 선수 가족과 아는 사이다. 이런 경기에서 "노력하면 이긴다"고 말하는 건 기만이거나 무지다.
닫힌 성문 앞에서
돈이 없어서, 지방에 살아서, 부모의 '빽'이 없어서.
이 삼중고의 벽에 가로막힌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는 여전히 훈계를 둔다. "눈을 낮춰라", "중소기업은 사람을 못 구한다는데 배가 불렀다."
하지만 청년들은 안다. 한 번 개천에 발이 묶이면, 다시는 용이 되어 날아오를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거나, 의대에 가기 위해 N수를 한다. 좁디좁은 바늘구멍만이 유일하게 남은 사다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토록 믿고 있는 마지막 보루, '시험(수능, 공채)'은 과연 공정한가?
마이클 샌델은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다음 화에서는 우리가 맹신해 온 '공정'이라는 이름의 신화를 깨부술 시간이다.
[다음 글] 9. 수능은 죄가 없다, 하지만 정의도 아니다: 우리가 믿었던 '공정'의 배신
"억울하면 시험 잘 보든가." 이 말이 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면죄부가 된 이유. 시험 점수가 인격까지 결정하는 '공정 강박증'의 실체를 해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