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용'들을 위한 변명 - 9

한·미·일 입시 잔혹사와 '능력주의'라는 거짓말

by Gildong

9. 수능은 죄가 없다, 하지만 정의도 아니다: 우리가 믿었던 '공정'의 배신


11월의 어느 날, 대한민국은 멈춘다.


비행기는 이착륙을 금지하고, 주식 시장은 개장을 늦추며, 경찰차는 지각생을 태우고 사이렌을 울리며 질주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이 기이하고도 성스러운 의식은 한국 사회가 무엇을 숭배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다.


우리는 수능을 사랑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숫자로 된 결과'만을 신뢰한다.


면접이나 서류 평가(학종)는 "부모 빽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의심하지만, OMR 카드에 찍힌 점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받아들인다.


"억울하면 너도 시험 잘 보든가."


이 말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면죄부이자, 모든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주문이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은 이 주문이 틀렸다고 말한다.


"시험이 완벽하게 공정하다면, 과연 그 세상은 정의로운가?"


공정(Fairness)과 정의(Justice)는 다르다


우리는 흔히 '공정'을 이렇게 정의한다. '모두가 똑같은 출발선에서, 똑같은 시험지를 풀고, 점수대로 보상받는 것.'


그래서 한국인들은 출발선이 다른 것에 분노한다. 입시 비리나 채용 비리가 터질 때마다 광장에 모이는 이유는 "게임의 룰을 어겼다"는 배신감 때문이다.


우리는 룰만 지켜진다면, 그 결과로 생기는 격차(의사와 청소부의 임금 차이 등)는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샌델의 질문은 더 깊숙한 곳을 찌른다.


설령 부모의 재력도, 사교육의 영향도 없는 '100% 무균실' 같은 완벽한 시험이 있다고 치자.


그 시험에서 1등 한 사람이 모든 부와 명예를 독식하고, 꼴찌 한 사람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 이것은 정의로운가?


샌델은 "아니오"라고 답한다.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능력주의의 폭정'일 뿐이다.


시험 점수는 당신의 가치가 아니다


우리가 수능 점수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라고 믿기 때문이다.


1등급은 우월한 인간, 9등급은 열등한 인간.


하지만 시험은 기껏해야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종류의 지적 능력(문제 풀이)'을 측정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성실함, 도덕성, 리더십, 혹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측정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이 숫자 하나로 인간의 존엄성까지 줄 세운다.


"공부 못하면 무시당해도 싸다"는 인식.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고 있는 집단적 폭력이다.


우리는 '절차적 공정함(시험 룰)'에 집착하느라, '결과적 정의로움(인간 존엄)'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깜깜이'보다는 '줄 세우기'가 낫다는 슬픈 믿음


사실 한국인들도 안다. 수능 한 방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게 불합리하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가 수능(정시) 비율을 늘리라고 외치는 이유는, 시스템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미국처럼 입학사정관이 에세이를 보고 잠재력을 평가한다?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그 잠재력, 돈으로 산 거 아냐?"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기득권들이 온갖 편법으로 사다리를 조작하는 꼴을 너무 많이 봐왔기에, 차라리 잔인하더라도 눈에 빤히 보이는 '점수 줄 세우기'가 가장 깨끗하다고 믿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공정을 향한 열망이라기보다, "더러운 꼴을 보느니 차라리 피 튀기는 경쟁을 하겠다"는 절박한 자기방어에 가깝다.


승자도 패자도 불행한 레이스


결국 우리는 모두가 불행한 경주를 하고 있다.


패자는 "노력하지 않았다"는 굴욕감 속에 살고, 승자는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 산다.


의대에 합격한 아이들이 행복할까? 그들 역시 또 다른 경쟁, 또 다른 서열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착취하고 있다.


일본은 체념했고, 미국은 착각했다. 그리고 한국은 '숫자'라는 감옥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공정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는 서로를 숫자로 평가하고 숫자로 비난하며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이 동아줄은 썩었다. 시험 점수는 결코 정의가 될 수 없다.


벽을 부수는 방법은 '더 공정한 시험'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시험 결과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 세상'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다음 글] 10. 성공(Success)이 아닌 가치(Value)를 묻다: 다시 쓰는 용의 전설

벽을 부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운'을 인정하는 겸손함과, 수직의 용이 아닌 수평의 꽃으로 피어나는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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