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과 각자도생의 청구서
지난 20년간 우리가 믿어온 인터넷의 신화는 '분산(Decentralization)'이었다. PC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배포하고, 소유할 수 있었다. 권력은 중앙에서 변두리로 이동했고, 우리는 기술이 개인을 자유롭게 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틀렸다. 그것은 저금리와 값싼 에너지가 만들어낸 '역사적 예외'였을 뿐이다. 이제 금리는 올랐고, 에너지는 부족하며, 효율성의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성(Castle)이 지어지고 있다.
앞서 수차례 확인했듯, 생성형 AI는 태생적으로 '초고비용 기술'이다. 쓸만한 모델 하나를 학습시키는 데 수천억 원짜리 GPU 클러스터가 필요하고, 원전 하나 분량의 전기가 소모된다. 이것은 차고(Garage)에서 창업하는 스타트업이나, 열정 있는 개인 개발자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비용은 곧 장벽이다. 그리고 장벽은 권력을 만든다. 역사의 시계추는 다시금 '분산'에서 '거대한 중앙집권(Hyper-Centralization)'으로 급격하게 기울고 있다. AI 혁명은 소수의 빅테크만이 입장권을 가진 '그들만의 리그'다.
이 거대한 비용 구조는 결국 누구에게 전가되는가? 바로 우리다. 우리가 받아 든 '청구서'의 마지막 내역은 단순히 비싼 가격표가 아니다. 바로 '소유권(Ownership)의 상실'이다.
AI 시대에 당신은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 당신은 챗GPT를 당신의 노트북에 설치할 수 없다. 코드를 뜯어볼 수도, 수정할 수도 없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매달 20달러, 혹은 그 이상의 이용료를 내고 잠시 접속 권한을 얻는 '구독(Subscription)'뿐이다.
우리는 디지털 영토의 주인에서, 거대 플랫폼이 지어놓은 영지에 얹혀살며 매달 소작료를 바치는 '디지털 소작농(Digital Serf)'으로 전락했다. 만약 당신이 구독료 결제를 멈추는 순간, 당신은 미래로부터 즉시 추방당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다. 기술을 매개로 한 '테크 봉건제(Techno-Feudalism)'다.
"우리는 너무 비싼 미래를 샀다."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이 문장의 진짜 의미는, 우리가 미래를 할부로 샀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편리함을 얻는 대가로 '자율성'을 지불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혁신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불꽃놀이에 취해, 그 불꽃을 쏘아 올리는 발사대가 누구의 땅인지 잊었다. 이제 파티는 끝났고, 땅주인은 밀린 임대료를 받으러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 청구서는 일회성이 아니다. 물가 상승률에 연동되어, 우리가 죽을 때까지 매달 갱신될 것이다. 효율성은 죽었다. 이제 '지대 추구(Rent-Seeking)'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제 닫힌 문 앞에 서 있다. 그 문을 열어줄 열쇠는, 애초에 우리에게 주어진 적이 없었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