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700원이 경고하는 ‘국가 신용’의 파산

발권력의 타락과 금융 권위주의가 만든 최후의 방어선

by Gildong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향해 질주하며 1,700원 돌파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1,480원이라는 숫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공포를 소환하는 지표를 넘어, 한국 경제에 대한 전 세계 투자자들의 '사형 선고'에 가깝다. 정부는 서학개미의 클릭과 증권사의 마케팅을 탓하며 책임을 전가하지만, 진짜 범인은 거울 속에 있다. 이것은 대외 악재가 만든 파도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간 화폐 신용의 붕괴다.


통화량의 역습과 자해적 재정 정책

환율 폭등의 근본 원인은 ‘지구상에 원화가 너무 흔해졌다’는 물리적 사실에 있다. 지난 4년간 달러 유동성이 4% 증가하는 동안 원화는 무려 18%나 폭증했다. 정부는 만성적인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찍어내고, 시장이 소화하지 못하는 물량을 한국은행의 ‘일시 차입금’으로 돌려막으며 스스로 화폐의 가치를 희석해왔다. 빚을 갚기 위해 돈을 찍어내는 ‘채권 돌려막기’ OS가 작동하는 한, 원화는 투자 자산이 아니라 하루빨리 탈출해야 할 ‘시한폭탄’이 된다.


실탄 없는 장수의 공허한 호통

정부가 외환 시장 개장과 동시에 원화 약세를 방어하겠다는 강력한 ‘구두 개입’을 쏟아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뒤를 받쳐줄 ‘실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부상 4,300억 달러라는 외환 보유액은 거대해 보이지만, 실질적인 수입 결제 대응 능력은 7개월치에 불과하다. 17개월치를 쌓아둔 일본이나 14개월치의 중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방어선은 종잇장처럼 얇다. 외환 딜러들이 정부의 호통 뒤에 숨겨진 빈 금고를 읽어내는 순간, 구두 개입은 시장을 진정시키기는커녕 투기 세력에게 ‘지금이 공격할 때’라는 신호를 주는 꼴이 된다.


자본의 정직한 망명과 금융 권위주의

자본은 도덕이 아니라 생존을 따라 움직인다. 정부는 환율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하고, 증권사를 압수수색하듯 조사하며 개인의 마케팅을 규제하는 ‘금융 권위주의’를 소환했다. 하지만 국가가 앞장서서 한미 반도체 협상 명목으로 3,500억 달러(약 450조 원)라는 천문학적 자본 유출을 약속해놓고, 정작 개인의 몇 푼 안 되는 달러 투자를 ‘환율 파괴의 주범’으로 모는 것은 기괴한 모순이다. 주권은 억압이 아닌 정직함에서 온다. 화폐의 가치를 권력으로 지키려는 시도가 실패할 때, 국가는 신뢰를 잃은 종이 쪼가리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