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버린 자리에 달러가 들어선다 - 2

7달러에 팔려나간 50년의 혁명

by Gildong

Ep 2. 굶주린 이맘: 신성함이 허기를 채울 수 없을 때


금요일의 공허한 설교

테헤란의 금요일 정오, 확성기를 타고 흐르는 이맘들의 설교는 더 이상 경건한 울림이 아니다. 그것은 굶주린 군중에게 던져지는 차가운 소음일 뿐이다. 예배당 밖 시장통에서는 양고기 한 근을 사지 못해 발을 구르는 가장들이 가득한데, 단상 위의 이맘은 ‘신성한 인내’와 ‘미국에 대한 저항’만을 외친다. 2026년 1월, 이란 국민들이 마주한 것은 신의 계시가 아니라, 정권이 던진 월 7달러(1,000만 토만)라는 모욕적인 바우처였다. 이 푼돈은 배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분노를 채우기엔 충분했다.


무너진 성(聖)과 속(俗)의 계약

전통적인 신정 체제에서 대중은 경제적 빈곤을 종교적 숭고함으로 인내해 왔다. 그러나 이 계약은 통치자가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할 때만 유효하다. 2026년 이란의 예산안은 이 암묵적 계약을 파기했다. 교육과 보건 예산은 삭감되었지만, 종교 학교와 해외 대리 세력(Proxy)을 위한 예산은 오히려 증액되었다. 신성함이 허기를 채워주지 못하는 순간, 종교 권위는 ‘정신적 지주’에서 ‘기득권의 방패’로 전락한다.


숫자가 폭로한 위선의 실체

압도적인 종교·선전 예산: 2026년 이란 국영 방송(IRIB)과 종교 기관에 할당된 예산은 교육부와 보건부를 포함한 주요 10개 부처의 예산을 합산한 규모에 맞먹거나 이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는 국가 자원이 국민의 삶이 아닌, 체제의 상징적 유지에 우선적으로 투입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해외로 흐르는 ‘이맘’의 자금: 국내 빈민 구제기금인 ‘이맘 호메이니 구호위원회’의 자산 상당수가 시리아와 레바논의 시아파 성지 복구 및 민병대 지원에 투입되고 있다. 내 배가 고픈데 남의 집 담벼락을 고치는 정권을 보며 시민들은 “혁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고 묻기 시작했다.

7달러의 조롱: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제안한 월 7달러 상당의 전자 바우처는 인플레이션 50%를 겪는 대중에게 정책적 대안이 아닌 ‘적선’에 가까웠다. 이는 정권이 현장의 고통을 수치화하지 못할 정도로 민심과 단절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종교를 실천하는 자 vs 경영하는 자

물론 모든 이맘이 부패한 것은 아니다. 말단 성직자들 역시 폭등한 물가에 고통받으며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체제의 정점에 선 ‘정치적 성직자’ 계급은 이미 시스템화된 이권에 눈이 멀었다. 이들은 종교를 실천하는 자들이 아니라, 종교를 경영하는 자들이다. 굶주린 대중이 이맘의 옷자락을 붙잡던 시대는 갔다. 이제 그들은 이맘의 터번을 바닥으로 내팽개치고 있다. 신성함이 생존의 알리바이가 될 수 없음을 군중이 본능적으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약탈적 실용주의가 걷어낸 종교의 베일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적 기조는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드는 것으로 읽힌다. 미국은 정권의 자금줄을 옥죄는 동시에, "종교적 권위보다 경제적 실리라는 대안적 선택지가 있다"는 메시지를 군중의 무의식에 심고 있다. 약탈적 실용주의 시대에 종교적 명분은 실질적인 경제력 앞에서 무력하다. 생존보다 고귀한 이념은 없다. 7달러의 모욕을 견디며 예배당을 떠나는 이란인들의 뒷모습에서, 50년을 버텨온 신정 체제의 종소리는 이미 장례곡으로 변해 있다.


[한 줄 질문] 신성함이 생존의 알리바이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군중은 어디로 향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