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서른다섯 번을 반복하면 시가 된다

A Poem Carved in Crimson Mist

by Gildong

슬픔은 어떻게 서른다섯 번의 건반 위에서 영원이 되는가


며칠 뒤면 스크린 위로 다시 한번 한 소년의 눈물이 흐를 예정입니다. 2월 4일 개봉을 앞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우리가 박제된 역사로만 알고 있던 단종의 삶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우리들은 다시 한번 세조의 야욕과 단종의 비극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왜 수백 년이 지나도록 그 소년의 슬픔을 놓아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단순한 연민일까요, 아니면 우리 안에 여전히 유배된 채 살아가는 어떤 근원적인 고독 때문일까요.


역사는 흔히 승자의 기록이나 거대한 권력의 이동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하지만 역사의 실체는 텍스트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떨림’에 있습니다. 단종의 삶은 정쟁의 결과물이기 이전에, 붉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청령포에 갇혀 홀로 읊조렸을 시(詩) 그 자체였습니다. 기록되지 못한 그 시를 읽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차가운 분석이 아니라 뜨거운 마음이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 <A Poem Carved in Crimson Mist>는 바로 그 기록되지 않은 떨림을 잡아내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35번의 타건으로 복원한 고독의 연대기

저는 이번 앨범에서 단종의 생애를 다섯 개의 단계, 총 서른다섯 곡의 피아노 선율로 그려냈습니다. 모차르트풍의 정갈한 고전주의로 시작된 즉위식의 찬란함은, 베토벤의 격정을 지나 드뷔시와 라벨의 인상주의적 물결로 흩어집니다. 왜 굳이 서양 클래식의 양식을 빌려왔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비극의 보편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그릇이었기 때문이라 답하겠습니다.

1. 몰락의 전조 -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언어로 기록한 왕궁의 영광과 추락. 권위가 무너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장엄하고도 처절했습니다.

2. 고단한 유배 - 슈만과 리스트의 낭만주의적 화법을 빌려 한양을 떠나는 발걸음을 묘사했습니다. 흙먼지 날리는 산길 위로 백성들의 연민이 겹칩니다.

3. 거대한 고립 - 브람스의 중후함과 라벨의 투명한 물결이 청령포에 갇힌 왕의 고독을 묘사합니다. 삼면의 강물이 거대한 창살이 된 역설을 담았습니다.

4. 피로 쓴 시 - 쇼팽과 바흐의 엄격한 비극성을 빌려 자규시(子規詩)와 사약의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앨범의 본질이자, 가장 아픈 장입니다.

5. 영원한 메아리 - 스크랴빈과 막스 리히터의 현대적 터치로 안식을 노래합니다. 죽음을 넘어 산신령이 된 소년 왕은 이제 붉은 안개 속에서 영원을 누립니다.


음악의 마지막 장인 ‘영원한 메아리’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단종은 죽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영월의 강물과 태백산의 바람 속에 메아리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35곡의 대장정은 단순히 500년 전의 왕을 향한 위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유배지에서 고독을 견디고 있는 우리 자신을 향한 노크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시각적 자극 뒤에 숨겨진, 진짜 소년 왕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이 서른다섯 개의 선율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붉은 안개는 걷히고, 그곳엔 오직 당신의 마음을 울리는 맑은 피아노 소리만이 남을 것입니다. 슬픔은 발효될 때 비로소 예술이 되고, 그 예술은 다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영원이 됩니다.


"역사는 글자로 남지만, 슬픔은 선율로 남는다."



자규시(子規詩 = 소쩍새 시) : 단종(端宗)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나는 한 마리 궁궐을 쫓겨난 원통한 새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짝지을 그림자도 없는 외로운 몸 산속을 떠도네

假眠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窮恨年年恨不窮 (궁한연년한불궁)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聲斷曉岑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두견새 울음소리 끊어진 새벽 어스름 달빛이 비치고

血流春谷落花紅 (혈류춘곡낙화홍) 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지는 꽃(두견화)만 붉구나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내 애끊는 소원 듣지 못하고

何乃愁人耳獨聰 (하내수인이독총) 슬픈 내 귀에 소쩍새 울음만 들리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