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평화헌법의 종언과 보조금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빛조차 닿지 않는 수심 6,000m의 심연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 적막을 깨고 일본의 시추선들이 쉼 없이 기계를 내려보내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남동쪽으로 1,900km나 떨어진 외딴 점, ‘미나미토리섬’ 앞바다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들이 여기서 건져 올리려는 건 단순한 진흙이 아닙니다. 중국이 쥐고 있는 자원 패권에서 벗어나게 해줄 마지막 열쇠, 바로 희토류입니다.
보통 자원 전쟁이라고 하면 영토 분쟁이나 거창한 외교적 싸움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선택은 훨씬 기술적이고 집요해 보입니다. 땅 위에서 부딪히는 대신, 인류가 한 번도 제대로 발을 딛지 못한 심해 바닥에 독자적인 광산을 만들겠다는 발상입니다. 이건 단순한 광산 개발을 넘어, 자원을 직접 통제하지 못하면 어떤 제조 시스템도 완성할 수 없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된 움직임으로 보입니다. 말하자면 제조 운영체제의 가장 밑바닥인 ‘커널’을 스스로 확보하려는 작업인 셈입니다.
들려오는 수치들은 꽤 압도적입니다. 미나미토리섬 심해에는 전 세계가 수백 년간 쓸 수 있는 양의 희토류가 잠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은 이미 작년에 시추에 성공했고, 올해부터는 매일 350톤을 채굴하는 대규모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2030년까지 중국산 희토류에서 완전히 독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국가적인 총력전을 펼치는 모양새입니다. 나라의 힘이 이제 땅 위의 국경선이 아니라, 바다 아래 얼마나 깊은 기술력을 가졌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일본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일본은 ‘클린 공급망’이라는 영리한 전략까지 덧붙이고 있습니다. 환경 파괴 논란이 있는 중국의 방식 대신, 자신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친환경적인 정련 방식을 앞세워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계산입니다. 기술을 줄 테니 광물을 우선 공급해달라는 이른바 ‘기술-자원 스와프’를 통해 자원 보유국들과의 관계도 새로 쓰고 있습니다.
결국 미나미토리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바다 아래의 주권까지 장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기술이 곧 안보가 되는 시대, 일본은 6,000m 아래의 침묵 속에서 자신들만의 성벽을 조용히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자원 하나 나지 않는 우리가, 일본의 이 집요한 ‘기술지정학적 도박’을 그저 남의 일 보듯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