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아직도 ‘건담’에 열광하는가 - 1

하사웨이의 비극과 자쿠의 모노아이가 2026년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

by Gildong

1. 하사웨이의 비명과 자쿠의 침묵


2026년 2월 일본, 겨울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극장 안은 기묘하게 뜨거웠습니다. 화면 속 하사웨이 노아가 내뱉는 고뇌가 IMAX 스크린의 공기를 흔들 때, 객석은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긴장에 잠겼습니다. 개봉 5일 만에 10억 엔, 60만 관객이라는 숫자. 이 압도적인 지표는 건담이라는 서사가 여전히 일본 사회의 심장 한복판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저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에 사로잡혔습니다. 화면 구석에 늘 박혀 있던 ‘©소츠·선라이즈’라는 익숙한 주문 대신, 반다이남코라는 거대 기업의 로고가 그 자리를 온전히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이 된 제국, 길을 잃은 낭만

오는 4월, 건담은 개별 창작물의 시대를 뒤로하고 ‘글로벌 IP 파운드리’라는 거대 시스템 속으로 완전히 편입됩니다. 기업의 논리로 보자면 영상과 음악, 라이선스를 하나로 묶어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겠죠. 하지만 모든 것이 규격화되고 전 세계로 유통되는 이 ‘완벽한 제국’을 바라보며, 저는 오히려 더 투박하고 불완전했던 시절의 건담을 떠올립니다.


2025년의 전 세계 건담 총선거 리스트가 ‘마이티 스트라이크 프리덤’이나 ‘건담 칼리번’ 같은 세련된 최신예 기체들로 도배될 때, 어느덧 삶의 중반을 넘어선 제 시선은 자쿠의 모노아이처럼 리스트의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합니다.


우리는 왜 여전히 붉은색에 설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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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만 명이 참여했던 지난 NHK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여전히 1988년의 ‘뉴 건담’이었고, 건담이 아님에도 당당히 상위권을 지킨 것은 샤아의 붉은 자쿠였습니다.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기업의 계산기대로라면 벌써 폐기되었어야 할 이 ‘구닥다리’ 기체들이, 2026년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그 투박한 철판과 기름 냄새 나는 엔진 소리 사이에서, 완벽하지 못한 채 오늘을 버텨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얀 영웅의 승리보다, 붉은 라이벌의 결핍과 양산형 기체의 묵묵한 뒷모습에 마음이 기우는 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기록되지 않은 우리들의 우주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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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건담의 제원을 나열하는 백과사전이 아닙니다. 거대 기업의 성공 방정식을 분석하는 경영서도 아니죠.


이것은 제국이 된 건담이 미처 가두지 못한, 우리 각자의 방 한구석에서 낡은 프라모델 상자와 함께 익어간 ‘낭만’에 관한 기록입니다. 10억 엔이라는 흥행 기록보다 소중한, 자쿠의 모노아이가 깜빡이던 그 찰나의 순간에 대한 사색이기도 합니다.


2026년, 모든 것이 데이터로 치환되는 이 시대에 왜 우리는 아직도 그 낡은 우주세기를 놓지 못하는지 — 그 아주 인간적인 이유를,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