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아직도 ‘건담’에 열광하는가 - 2

하사웨이의 비극과 자쿠의 모노아이가 2026년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

by Gildong

2. ©SOTSU의 퇴장, 효율이 낭만을 앞지를 때


2026년 2월, 바다 건너 일본 극장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차가운 금속음과 뜨거운 한숨으로 가득합니다. 비록 국내 개봉 소식은 아직 없지만, 현지의 IMAX 스크린을 점령한 《섬광의 하사웨이: 키르케의 마녀》는 개봉 5일 만에 10억 엔, 60만 관객의 심장을 두드렸습니다. 거대한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모빌슈트의 육중한 구동음과 주인공의 처절한 고뇌가 열도를 흔들고 있다는 소식은, 한국에 있는 오랜 팬의 마음마저 덩달아 일렁이게 합니다. 그러나 이 뜨거운 흥행 뉴스 뒤편에서, 저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백 하나를 발견합니다.

지난 40여 년간 건담이라는 세계의 입구와 출구를 지키던 마법의 주문, ‘©소츠·선라이즈(創通・サンライズ)’가 사라진 자리입니다.


시스템이 된 낭만, 그 이름의 무게

오는 4월 1일, 반다이남코 그룹은 소츠를 완전히 흡수 통합하며 건담이라는 거대한 유산을 하나의 ‘글로벌 IP 파운드리’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킵니다. 영상 제작과 음악 자산, 굿즈의 라이선스 관리까지 모든 기능을 하나로 묶겠다는 선언이죠. 기업의 언어로 보자면 이것은 ‘시너지의 극대화’이자 ‘글로벌 표준화’를 향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이제 건담은 개별 제작자의 고집이 묻어나는 ‘작품’의 영역을 넘어, 전 세계 어디서든 동일한 품질로 구동되는 하나의 정교한 OS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이 완벽한 제국의 탄생 앞에서, 우리는 왜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일까요. 효율이라는 단어가 낭만이라는 단어를 앞지를 때,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데이터는 말해주지 않는 ‘기름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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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이남코가 음악과 영상을 통합하며 글로벌 전개를 외칠 때, 팬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통합되지 않았던 시절의 투박함입니다. 174만 명이라는 유례없는 팬이 참여했던 2018년 NHK 투표에서 1위로 꼽힌 것은 최신형의 화려한 기체가 아니라, 1988년 아무로 레이가 마지막 숨을 내쉬며 탔던 ‘RX-93 뉴 건담 (� Gundam)’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업이 설계한 효율적인 미래보다, 가장 아프고 치열했던 과거의 서사에 자신의 표를 던졌습니다. 20대부터 40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이 거대한 팬덤이 응답한 것은 기체의 성능 지표가 아니라, 그 장갑판에 묻어 있던 ‘인간의 흔적’이었습니다. 기업은 저작권과 음악 자산을 일원화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 문방구 앞에서 만지작거리던 그 프라모델 상자의 낡은 마찰음까지 규격화할 수 있을까요.


낭만은 기획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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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의 하사웨이》의 10억 엔 흥행은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누군가의 고뇌가 세대를 넘어 여전히 공감을 얻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26년의 이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누군가에게는 수익의 극대화로 읽힐 때, 한 세대를 건너온 중년의 팬들에게는 익숙했던 이름들이 지워지는 ‘기억의 상실’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제국이 된 건담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자쿠 한 대의 모노아이가 깜빡이던 그 비효율적인 순간들입니다. 붉은색은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복제할 수 있고, 음악은 시스템으로 통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투박한 엔진 소리 하나에 위로받던 우리들의 낭만은 결코 기획될 수 없습니다. 효율이 낭만을 집어삼키는 시대, 우리는 사라지는 것들의 뒷모습에서 우주세기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