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얼룩은 사랑으로 도착한다

Fractal|34 Pieces of Us

by Gildong

창가에 맺힌 성에 위로 푸른 새벽빛이 비스듬히 걸립니다. 새벽 세 시. 모니터의 하얀 불빛이 잦아들고, 마지막 곡의 잔향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순간 방 안에는 낯선 정적이 내려앉습니다.


귀가 먹먹합니다. 지난 수많은 밤 동안 나를 통과해 간 서른네 개의 숨결이 머릿속에서 어지러운 무늬를 그리며 명멸합니다. 처음엔 그저 정교한 수열을 맞추듯 소리를 쌓아 올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밤, 단단하던 박자 하나가 발을 헛디디며 무너져 내리던 찰나를 기억합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손가락 끝에서 완벽이라는 가면이 깨졌을 때, 그 틈 사이로 비로소 누군가의 젖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이 소리들은 정돈된 공식이 아닙니다. 매일 밤 서툴게 내뱉은 숨결이 창문에 남긴, 지저분하고 투명한 얼룩에 더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프랙탈이라 부르며 무한한 질서라 말하지만, 나에게 이것은 빗물에 젖은 어깨를 털어내며 겨우 버텨낸 고독의 결일 뿐입니다. 소리는 때로 폭력적이었고, 침묵은 그보다 더 무거웠습니다. 그 무게를 견디며 빚어낸 무늬들이 이제야 창가에 나란히 눕습니다.


오래 헤매던 신발을 벗어둡니다. 소파 깊숙이 몸을 묻자, 노을빛이 거실의 먼지들과 뒤섞여 황금빛으로 번져갑니다. 방금까지 나를 괴롭히던 불규칙한 무늬들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집니다. 34곡의 대장정 끝에 내가 마주한 것은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단지 비어버린 컵과 길게 늘어진 나의 그림자입니다.


내가 쫓던 그 모든 복잡한 소리들은 결국 이 고요한 정적 하나를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소 없는 편지처럼 떠돌던 이 조각들이 당신의 창가에 닿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그려온 그 무규칙한 삶의 얼룩들이 사실은 얼마나 눈부신 것이었는지, 이 투박한 노래들이 나지막이 읊조려 줄 것입니다.


문이 닫힙니다. 모든 방황은 결국 사랑으로 도착합니다.



Track 1. Postmark (Lyrics)


먼지 쌓인 서랍 구석, 낡은 기록들

지우지 못한 이름 옆에 머문 타임라인

잘 지내냐는 말 한마디가 무거워

엔터 키 위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말아


창밖엔 벌써 계절이 바뀌는 소리

난 여전히 여기, 멈춰진 페이지 속

풀리지 않는 문장들을 덧칠해


Unread, but I still write.

내 맘 끝에 찍힌 낡은 Postmark.

보내지 않아도 닿을 것 같은 기분

익숙한 멜로디에 실어 보내는 진심


화면 속 반짝이는 커서의 깜빡임

꼭 내 심장 소리 같아 조금 우스워

거창한 약속이나 비장한 다짐 같은 건

이제 다 낡아버린 필름처럼 희미해져


기억의 여백을 채우는 법을 배워가

이건 너에게 쓰는 마지막 비밀

I’m just leaving a trace.


Unread, but I still write.

내 맘 끝에 찍힌 낡은 Postmark.

보내지 않아도 닿을 것 같은 기분

익숙한 멜로디에 실어 보내는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