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끝났고, 나는 아직 그 시간에 남아 있다.

by Gildong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후 5시였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빛이 천천히 발등 위로 올라왔다. 바깥의 사람들은 어딘가를 향해 서둘러 흩어졌지만, 이 자리만은 시간에서 분리된 것처럼 고요했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삼키는 순간, 이미 끝났어야 할 어떤 장면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돌아갈 수 없는 방향이라는 걸 알면서도, 몸은 자꾸만 불가능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이별 이후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고 초침이 움직이는 것은 외부의 일일 뿐, 내부의 특정 지점은 단단하게 굳어버린다.


우리는 보통 사랑을 ‘지나간 것’이라 말한다. 그래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꿀 뿐이다. 빗물에 섞인 라디오 소리처럼, 문 앞에 남겨진 신발처럼, 설명할 수 없는 사소한 잔해들로 흩어져 남는다. 그리고 그 흔적들이 현재를 붙잡아 세운다.


그래서 어떤 오후는 무한히 반복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이미 끝난 일들이 내부에서 끊임없이 재생된다.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상태를 그대로 응시한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돌아오는 길, 습관처럼 들른 카페의 소음이 낯설게 부드러웠다. 특별한 변화는 없다. 나는 아직 그 시간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누군가를 잊기 위한 여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사랑했던 시간을 지우지 않고, 그 시간에 고정된 자신을 그대로 견디는 방식이다. 고독은 극복하는 대상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로 굳어지는 과정이다.


오후 5시는 흐르지 않는다. 그 시간은 남는다.


사랑은 끝났고, 나는 아직 그 시간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