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토라레]의 추억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같은 학원에 다니던 친구가 물었다. 개봉한 지는 꽤 되었지만 재미있는 영화라며 CD를 빌릴 건지 말이다. CD를 빌려,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았다.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꽤나 재미있는 영화여서 옆반아이들도 빌려간 탓에 빨리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에 조금 애탔던 것 같다.
오늘 AI와 대화를 나누다 그 영화가 떠올랐다. 바로 [사토라레].
[사토라레]는 사토 마코토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일본어 ‘깨닫다’의 뜻을 가진 ‘사토리’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주인공 사토미 켄이치는 비행기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로, 그의 특별한 능력 덕분에 살아남는다. 바로 자신의 생각이 주변 사람들에게 들린다는 능력이다. 너무 똑똑한 천재였기에 국가는 그가 평범한 삶을 살도록 돕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의 생각이 들리지 않는 척 연기한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사토라레는 극심한 정신적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문득 그 영화가 떠오른 까닭은 이렇다. 최근 회사에서는 ‘랜덤 런치’ 모임을 주선하였고, 여러 주제의 모임 중 첫 번째 조의 테마는 AI였다. “AI 없인 못 살아, 보고서 뚝딱, 번개조사” 같은 문구가 달린 조. 나 역시 AI 덕분에 번개조사를 해결한 지 두 달이 넘은 것 같다. 그 순간, [사토라레] 영화가 떠올랐다. 사람들에게 내 생각이 그대로 전달된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졌다.
이제는 하루에 한 번쯤 나의 온전한 생각을 AI에게 털어놓는다. 그 순간, 나 역시 주인공이 느꼈을 불안에 닿는다. 내 안의 생각을 원형 그대로 글로 옮겨 전하고, 그 반응을 지켜보는 일. 영화 속 주인공 켄이치는 천재였고 그의 따뜻한 생각이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하지만 나는 어떤가. 내가 털어놓는 것은... 말실수에 대한 고민, 양자택일 상황에서의 장단점 비교, 건강 염려증 상담…. 착한 켄이치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
그 속에서 나는 고민을 정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고민을 나누고 있는 것일까? 이 대화의 소재는 왜 친구에게 전하지 못했을까. 친구에게 전화를 걸려다 멈춘다.
나의 고민정리가 정말 하루 한 번으로만 끝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