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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4종 경기. 한화 불꽃쇼

by 길고영

-무거운 몸-

금요일부터 머뭇거리던 일. "한화 준우승 기념으로 멀티미디어 불꽃쇼 한다는데 가실 건가요?"
동생의 연락. "언니 갈 거야? 우리는 버스 탑승 거절 되어서 유튜브로 보려구."
남편의 연락. "좀 잤어? 나는 자다가 이제 일어나서 마트나 갔다 오려구."


물, 장갑, 목도리, 신용카드를 들고 길을 나선다.



-눈치-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가니 사람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일행과 이야기를 나눈다. "방금도 버스 그냥 지나감." 서둘러 대전 공용 자전거 어플 '타슈'를 실행한다. 그리고 자전거 QR코드 인식 결과, 정차된 자전거 3대 모두 '현재 이용 불가'란 판정을 받는다.


방금의 정류장 보다 종점에 가까운 정류장으로 급히 향한다.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301번 버스는 지금 계속 만차여서 못 탔거든 ㅠㅠ 그래서 802번 버스 타고 전민동 지나서 내려서 걸어서 갈까 봐..." 불꽃쇼장으로 가는 버스는 번번이 만차/무정차 통과인 까닭에 근처로 가는 다른 버스를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나는, 쇼장으로 가지만 만차로 통과하던 버스를 마지막으로 한번 기다리기로 마음먹는다.


이어서 도착한 버스.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는 마지막 버스. 드디어 낑겨 탄다. 그리고 정류장마다 타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이들의 아쉬운 표정을 마주한다. 그중에는 "죄송합니다. 여기 낑겨도 되겠네요." 하며 넉살 좋게 타는 몇몇은 덤이었다. 만차+만차 인 버스에 싣려 '놀이동산'같은 '회전'을 느끼며 조금 떨렸다.



-달리기-
그리고 내리기 세 정거장 전에 우리는 모두 도로에 갇힌다. 오도 가도 못하는 도로. 버스 내 승객들이 웅성 인다. "앞에 차가 꽉 들어차서 못 가는것 같네. 신호 한 번이 이렇게 길 수가 없는데." 세 정거장 전에 내릴지 말지 갈팡질팡하다 내린다. 그리고 뛴다. 이제 '드론쇼' 시작 6분이 남았다. 걸어서 24분 걸리는 거리. 천천히 이동하는 대열의 사이사이에 발을 딛이며 앞으로 앞으로. 숨이 차고 온몸에 땀이 솓는다.


그리고 넓은 갑천의 하늘을 만나는 순간 '펑'하고 불꽃이 터진다.



-자전거-
아직 불꽃쇼가 종료되진 않은 시점.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궁리를 한다. 몇 만의 인파가 운집한 곳. 데이터가 잘 연결되지 않는다. 인파와 조금 멀어진 곳에서 타슈를 검색하고 발걸음을 옮긴 뒤 빌린다. 타슈에 앉아 마지막 불꽃을 보고 다리를 굴려 자전거를 출발한다.


그러곤 곧 인파와 한데 섞인다. 자전거에 내려 그들과 같이 오르막길을 오른다. 그들은 차로 뿔뿔이 흩어지고. 이제 자전거를 굴릴 공간, 오르막길을 마주한다. 헉헉대며 오르막길의 끝에 도달한다.


두 번째 오르막. 힘에 부쳐 속력이 떨어지는데 내 옆을 쌩하고 앞지르는 커플이 보인다. 한분은 나와 같은 '타슈'를. 다른 분은 노란색이기에 '카카오 바이크'인 줄 알았다. 그들이 횡단보도에 멈추고 서로를 본다. 나보다 연배가 많은 분들이고, 두 분 다 '타슈'이며, 노란색을 타던 분은 여성분이란 사실..... 다음 횡단보도에선 우리 모두 '불꽃쇼'를 보고 온 길이며, 아직까지 버스가 한대도 지나지 않은 것 같다며, 다들 어찌 집에 가나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진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흠뻑 젖은 몸을 터덜이며 집으로 돌아온다. 영상에서 접한 드론쇼 같이 휘향 찬란하진 않았지만, 드론의 출근/퇴근, 너무도 화려했던 불꽃쇼, 거기로 향하는 여정,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생이 직접 보지 못한 것을 모두 눈에 담았다.
빛과 사람과 숨이 뒤섞였던 밤.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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