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많은 부분이 잘 맞지만, 취미는 다르다.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고, 굳이 세상을 많이 돌아다니지 않아도
생각이 자란다는 사람. 그게 남편이다.
그렇지 못한 나는, 결국 재작년 엄마를 꾀어보았다.
여러 친구들과의 모임을 즐기며
봄엔 부산, 여름엔 강원도, 가을엔 전라도, 겨울엔 제주로 떠나는 엄마에게 제안했다.
“우리, 모녀끼리 여행 한번 가볼래요?”
그 여행은 딱 한 번으로 끝났다.
경치 구경이나 쇼핑은 내겐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제안했다.
“차라리, 한 달에 한 번씩 등산 다녀보는 건 어때요?”
이전엔 하루에 몇 번씩 12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운동했는데,
이사를 하고 나선 거의 1년 동안 운동을 쉬고 있던 터였다.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그해 우리는 정확히 12개의 산을 함께 올랐다.
봄의 민주지산에선 벌레들의 날갯짓을 들었고,
여름의 금오산에선 가도 가도 나오지 않던 길목 끝에
약사암에서 펼쳐진 탁 트인 풍경을 마주했다.
낮지만 숲이 깊은 식장산의 울창한 숲,
보문산 군락지의 풍경은 미국 국유림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한 달에 한 번, 네 시간의 산행.
육체의 만족감보다 더 크게 남은 건
부모님과 나누던 ‘사는 이야기’였다.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시간.
그게 참 좋았다.
하지만 계획대로만 되진 않았다.
봄엔 지인 산에 고사리 캐러 가는 부모님의 일정,
여름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가을엔 전국적인 산불 주의보,
겨울엔 눈으로 덮여 길이 가려진 등산로…
우리를 막는 이유는 계절마다 넘쳐났다.
게다가 운동 효과로만 본다면
한 달에 한 번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올해는,
시간이 맞으면 부모님과 함께.
그 외엔 혼자서라도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동네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누적 고도 210m 정도의 얕은 산.
왕복 40분쯤 걸린다.
지근거리에 있어 퇴근 후에도 부담 없다.
오늘은 비가 소강상태다.
잠깐 틈을 내어 또 올라볼 생각이다.
지난주엔 산란기에 접어든 까마귀 소리가
온 산을 시끄럽게 채웠다.
오늘은 또 어떤 소리를
정상에서 마주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