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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고등어조림과 클리셰의 진심

by 길고영

엄마의 못다 이룬 꿈을 자식에게 투영하는 건,

극 전개의 클리셰라 여겼다.

나는 그것이 자녀의 삶을 자기 인생이라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믿어왔다.


토요일, 일요일 꼬박 이틀을 사용해서 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나의 편견을 부쉈다.


드라마의 제목이자, 마지막화의 제목인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도 방언으로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를 뜻한다고 한다.

이 말은 오애순의 자작시의 제목이자

애순이 엄마에게, 본인에게, 남편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애순 열 살이 되던 해,

엄마 광례는 잠수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후 새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집을 전전하던 애순은,

엄마가 지키려 했던 자신의 꿈,

대학, 시인, 육지를 가슴에 묻은 채

자신을 목숨처럼 아끼는 무쇠, 관식과 결혼한다.


애순의 꿈을 펼치기 전

자녀가 애순의 삶에 찾아오고

애순은 본인의 꿈을 저편으로 치운다.

광례의 딸 애순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딸 금명에게 이어주려 한다.

그리고, 금명이가

아궁이 앞에서 불씨를 살리는 삶이 아닌

꿈을 펼치는 삶을 택하길 바라며 길러낸다.


그리고, 금명은 자신의 삶이,

오롯이 자기 힘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가족 모두가 보태온 시간과 마음의 총합이라는 것을.

그래서 임신한 몸으로 동생의 합의금을 빌릴 용기를 내고,

딸의 피아노 구입비를 부모님의 건강검진비로 돌릴 줄 안다.


문득 생각했다.

내 삶에도 저런 귀한 인간관계가 올 수 있을까?

그건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게 아니란 걸,

드라마는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충섭과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금명이 충섭의 엄마에게 건넨 영화티켓이.

금명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사경을 헤맬 때

여자친구 부모님께 인사드리다 말고,

병원으로 뛰던 충섭의 버선발이.

있었기에 가족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리라.


남자친구 영범과의 결혼이 성사되지 않도록

금명을 길러낸 애순을 떠올려 본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산층의 조건이나 찾아보던 나에겐

너무도 낯선 질문이다.


밥상 위에 올려진 계란말이를 더 많이 먹고자

아빠와 젓가락 싸움을 하던 국민학생의 나는,

용돈으로 구매한 생물 고등어로 고등어조림을 만들어

어버이날 반찬으로 내놓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연애하기 바빴던 젊은 날을 지나

이제는 인간관계를 더 귀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제야 감독들이 심어둔 클리셰의 속뜻을 짐작게 된 오늘,

나는 생물 고등어를 장바구니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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