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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도그빌]을 보고

잠자리를 묶는 실

by 길고영


칠성잠자리에 실을 묶어 손에 쥐고 있던 기억이 있다.

몇 년 전에는 결혼비행을 마친 여왕개미를 생포해

그녀의 왕국 건설을 구경하고, 생먹이를 찾아주기도 했다.

도서관 근처에 사는 토실토실한 고양이는

행인들의 다리 사이를 누비며 애교를 부리곤 한다.


이런 모습들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용인되는 우위일까?

아니면, 인간이 아닌 존재이기에 허락되는 친밀함일까?


어제 관람한 영화, [도그빌].

TV 예능 [크라임 씬]의 세트장을 떠올리게 하는,

검은 바닥 위 흰 테이프 선으로 나뉜 무대.

전축이 클로즈업되고, 바로 그 무대 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국의 가난한 마을 도그빌.

미래의 성공한 소설가를 꿈꾸지만

생계는 아버지의 돈에 의존하는 청년 톰.

그리고 그의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 그레이스가 나타난다.


록키산맥을 넘어로 도망치던 그레이스는

톰의 설득에 따라 ‘근로 제공’이라는 조건으로 마을에 머문다.

이야기는 한때, 아름답게 흘러간다.

그레이스는 임금을 받고, 못난이 인형을 모으며

자신만의 소소한 기쁨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기쁨도 오래가지 않는다.

그레이스는, 실이 묶인 잠자리처럼

점점 마을의 사람들에게 갇히고 만다.


벽 하나 없는 트인 무대 위에서

그레이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겁탈당한다.

관객은 그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하지만,

극 속의 배우들은 ‘못 본 척’하며 연기해야 했을 것이다.

감추지 못한 진실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를 보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든 손에 잠자리의 실을 쥘 수 있다.

그 실을 잡고 있는 나를 마주쳤을 때,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 실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일까?


이 질문이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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