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는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었다.

by 길고영

직장 생활은 나도 모르게 말투를 남겼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해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처음엔 단순한 설명이라 여겼지만,

돌이켜보면 ‘설득을 가장한 강요’에 가까웠다.


최근 시작된 관계에서

내가 건넨 몇 마디에

상대가 살짝 방어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관계를 시작할 당시의 불안함에서 비롯된

뾰족한 말투였던 것 같다.


그날 저녁, 꼬인 실타래를 푸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고,

결국 전했다.


그런데 얼마 뒤, 비슷한 상황이 다시 생겼다.

이번엔 내 성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다시금 내 말투를 돌아보게 했다.


인간관계를 들여다본다.

조금 친해진 사람에게는 ‘듣는 척’만 하게 된다.

속마음을 굳이 나누지 않는다.

이건 남편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

결정을 앞두고는 의견만 주고받으면 그만이었다.

직장에서 익힌 말투로,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않았다.

오직 전달하고, 설득하고, 정리하는 말만 배워왔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수첩 첫 장에 적는 문장들도 들여다본다.

대학원 시절 반복해 읽었던 시.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사회인이 된 후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10가지 방법'이 추가되었고,

3년 전부터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자’라는 문장을 덧붙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여유에 닿아본 적은 없었다.


나의 성장을 보아온 어른들의 말을 떠올려본다.

몇 년 전 친척 어른이 말했다.

“OO이가 사회생활 몇 년 하더니, 말하는 게 딱 변했더라.”

지금도 그 말이 가끔 떠오른다.


여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삐까번쩍한 건물의 최고 책임자는 수수하게 입는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진짜 자신 있는 사람의 말투는 어떤 모습일까.

상대의 말에서 들어줄 수 있는 부분을 들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궁금하다.


그 대화가 왜 그렇게 오래 남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말투는 결국,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의 흔적이니까.

다음에는, 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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