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3장 – 교실이라는 행성
창가 맨 뒤자리.이반의 자리.이제는 나의 자리.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운동장 끝 철봉 옆에는 까치가 내려앉아 있었다.깃털을 몇 번 털더니 툭툭 날아올라 교문 너머로 사라졌다.
그 순간, 교탁 앞에서 국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이반, 다음 문단 읽어볼까?”
나는 화들짝 놀랐다.책은 아직 펴지도 못했는데.
운 좋게,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자기 책을 반쯤 넘겨 나에게 보여주었다.나는 얼른 눈으로 문단을 찾았다.
“‘봄은… 참으로…’”
글자들이 춤을 췄다.한 줄이 다음 줄과 겹쳐 보였다.‘봄’인지 ‘붐’인지, ‘조용히’인지 ‘조룡히’인지눈이 헷갈렸다.
나는 더듬거렸다.주변에서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이 다가와 나지막이 말했다.“천천히 해도 돼. 한 글자씩.”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글자는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반은 매일 이렇게… 글자와 싸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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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간은 원어민 영어였다.‘이건… 더 망했겠지.’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Repeat after me: The boy is holding a balloon.”
선생님의 발음이 귓가에 닿았고,그 말이 입으로 먼저 흘러나왔다.
“The boy is holding a balloon.”
목소리는 가볍고 또렷했다.뇌가 기억한 건 없는데,귀가 기억한 문장이 입으로 흘러나왔다.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Excellent, Ivan! Your pronunciation is really coming along.”
나는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이건 뭐지… 나는 모른다 생각했는데, 귀가 먼저 안다.’
그리고 선생님이 칠판에 문장을 적었다.“Now, let’s try reading this one.”
The boy is holding a balloon.
방금 완벽하게 말했던 그 문장.그런데 칠판의 글자들은 낯설었다.‘T’와 ‘h’가 붙어 있는 건지, 떨어진 건지.‘balloon’의 ‘l’이 두 개인지 세 개인지.
나는 입을 다물었다.귀로는 완벽한데,눈으로는 길을 잃었다.
주변 아이들은 쉽게 읽어냈다.그들에게 글자는 소리였고,소리는 곧 의미였다.
하지만 이반에게,글자는 소리가 되기 전에 먼저 미로였다.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이반은 소리를 외운다.이미 음악을 하기 전에,그의 귀는 언어를 흡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눈은 다른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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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 번째 시간, 수학.지옥이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숫자를 썼다.1과 1/3 더하기 2.4 빼기 0.75
어렵지 않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반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연필을 쥐었지만,숫자들이 춤을 췄다.
‘1’과 ‘1/3’이한 덩어리인지, 두 개인지.‘2.4’의 점이어디에 찍혀 있는지.‘0.75’가‘0’과 ‘75’로 보이는지,아니면 ‘075’로 뭉쳐 보이는지.
문제를 풀기 위한 규칙은머릿속에서 한 줄로 정렬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그 규칙을 읽어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나는 첫 번째 줄을 지우고, 다시 쓰고,다시 지우고, 또 쓰다가결국 문제 한 줄도 못 풀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가 이럴 리가 없어.아니, 이반이 이걸 왜 못 푸는 거지?’
주변 친구들은 답을 적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누군가는 자랑스럽게 손을 들고 있었다.그들만의 언어,그들만의 속도.
나는 그 틈에서 길을 잃었다.
선생님이 다가왔다.“이반아, 다시 한번 천천히 해볼까? 분수를 소수로 바꾸면… 기억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그건 ‘기억났다’는 뜻이 아니었다.그저 ‘알아보려고 노력 중’이라는 뜻이었다.
그 순간.나는 눈앞이 흐릿해지는 걸 느꼈다.
‘이반아… 네가 매일 견디는 게 이런 거였구나.’
칠판의 숫자들이 춤을 추듯 어지럽게 흔들렸다.그리고, 내 손에 쥔 연필이 마치 나를 비웃는 듯뚝—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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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나는 한동안 그것을 주우러 몸을 숙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