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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Oct 25. 2022

표절, 평생의 숙제

Writer's block Diary: 21일째

Photo by Anton Maksimov 5642.su on Unsplash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성경의 전도서 1장에 나오는 구절은, 예술의 표절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사실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은 엄밀하게 말하면 틀렸다고도 볼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이전에는 없던 물건들이 속속 출현하기 시작했으니까. 마치 생명체가 그 가지를 달리 뻗어 수많은 종, 속, 과, 목, 강, 문, 계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대개의 물건은 오리지널이 아니다. 하나하나 면밀히 따지면 각각의 사물은 계보와 사슬을 가진다. 이것 때문에 저것이 생겼고, 저것이 다시 다음것을 만들게 하며, 이것과 저것을 합쳐서 합성종이 태어나고, 자연의 것을 본따서 문명의 것을 만들고. 결국, 카피는 숙명이다. 진화하기 위해서.


고대 예술에는 작가의 이름이 붙어있지 않았다. 표절이 도마에 오른 것은 작가의 아이덴티티와 저작권이 도입되면서부터였다. 창작한 본인에게 명성을 돌려주겠다는 것이 아이덴티티요, 창작한 본인에게 창작한 대가를 돌려주겠다는 것이 저작권이다. 현대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개념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표절이란 상당히 복잡한 검증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시되는 음악의 경우, 최근에도 유희열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베꼈다는 혐의로 대중들의 질타를 받은 바가 있고(정식으로 검증된 결과는 없으나 유튜브에 둘의 음악을 비교한 영상이 꽤 많이 올라와 있다. 대표링크 : 유희열 빼박 표절 모음 - 류이치 사카모토 (총 5곡) https://youtu.be/pF9dMCHd-UE), GOD의 '어머님께'는 2Pac의 'Lifes goes on'을 인용했음이 확인되어 2pac측에 저작권료를 물어주기도 했다(앨범 가사집에 편곡 표기는 했으나, 내부 문제로 샘플링 비용을 지급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표링크 : https://youtu.be/WK_gRySxRYw).


나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Rock and Roll dance'의 도입부에 깔리는 기타 리프가 AC/DC 의 명곡 'Back In Black'과 너무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한때 공식 서태지닷컴에 문의하기도 했는데 바로 삭제를 당했다. 왜냐하면 이 곡은 진짜 작곡자가 Angus Young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샘플링을 통해 2차 창작을 한 곡이었다.


이외에도 표절 판정 사례는 수두룩한데 이는 한국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음악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미술에서는 남의 그림을 베끼면서 실력을 쌓는다. 사조라고 묶어서 부를 정도로 서로의 화풍을 답습하는 경우도 많다.


문학이라고 다르랴. 팩션이라는 용어가 탄생할 만큼 역사적인 사실을 두고 재해석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팬픽션이라는 이름으로는 주로 아이돌 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BL 소설이 활발하게 생산되어왔다.


헌정, 헌사의 개념으로 너무 좋아하는 작품을 해체하고 발췌하고 인용하여 자기 식대로 소화한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엔 원작자의 저작권이 어디까지 포괄항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재판이라도 하게 된다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결정되지 않을까 싶다.


한때 한국 문학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신경숙 작가의 경우에도 2015년, 표절로 구설에 올랐다.


이는 이응준 작가의 기고문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었고, 다른 신문들에서도 연달아 기사가 나면서 파문이 커졌다. 결국 고발(신경숙 작가가 표절을 통해 출판사들의 업무를 방해했고 인세 등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을 당해 검찰 수사를 받기에 이르지만 저작권 침해 고발이 아니어서 표절 여부를 다투는 사안이 아니었으므로 이 부분은 판단되지 않고 종결되었다.


사실 나는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신경숙의 <전설> 두 작품 모두를 전부 다 비교하며 읽어보았다. 표절 부분을 차치하고 작품 전체로 놓고 보면 <전설>이 더 재미있었고, 그래서 의아했던 게 사실이다. 자기만의 문장으로 건너갈 능력이 있으면서 왜, 싶어서 말이다. 물론 단지 그 작품만이 문제가 되었던 게 아니라 여러가지 증언들이 나오면서 더 이상 실드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버렸지만.


신경숙 작가는 절필했다가 4년후, 2019년에 계간지 창비에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아래 이응준 작가의 기고문은 문학을 염두에 두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6758


예술가는 누구나 오리지널을 꿈꿀 것이다. 하지만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하는 데는 수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지나치게 오리지널리티에만 집착하는 경우, 검열하는 자아에 힘이 실려 도리어 창작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여기에도 정답이 있을 리는 없다.


결국 표절 역시 예술가 자신이 끝내 짊어지고 가야 할 보따리 중의 하나가 아닐까. 아, 그러니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는 말은 예술가에게는 최고의 칭찬일 수밖에 없으리라.




***


Writer's block Diary 시리즈 1~20일째 글은 아래의 브런치북 <작가들은 대체 왜 그래?>로 묶어둔 상태입니다. 브런치북과 매거진의 글은 한데 묶을 수가 없는 관계로 부득이 21일째 글부터는 매거진 <라이터스 블록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계속해보겠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이전 글을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브런치북을 이용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writersblo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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