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 4. < 적응 > ep10. 비영리세계에 스며들다
무척 훌륭합니다! 당신이 잘할 줄 알았습니다.
처음 마주하는 보스라는 존재이기에 상대하기 까다로웠을 텐데, 아주 지혜롭게 물리치고 다음 퀘스트로 진입하였군요.
부상은 없었나요? 지혜롭게도 회복의 아이템 역시 잘 활용한 것 같군요.
게다가 이것저것 몸에 두른 장비를 보니 이제 제법 용사(라고 쓰고 활동가라고 읽는다는 것은 이젠 다 아시죠?)의 폼이 납니다.
자, 당신은 이제 활동가로서의 길을 걸어가기로 결심하고 마음 한구석의 불안함도 떨쳐버리고서 진정 새로운 환경에 진입하였습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 해도 다름이 없을 것 같아요. 아직 땀이 식지 않았고, 호흡도 거칠고, 심장도 쿵쾅거리고 있을 테지만 당신의 뜨거운 몸이 식기 전에 얼른 다시 출발해 보죠.
함께 달려가 봐요!
이제부터 정말 중요한 시간이 다가옵니다. 초기 ‘진입’의 단계를 벗어나 바로 이 ‘비영리’라는 특별한 세계 안에서 ‘적응’을 해나가는 것이죠.
만약 당신이 비영리단체에서의 경험이 전혀 없거나 다른 영리 기업에서 오래 활동해 왔다면 더더욱 비영리 영역에서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할 것입니다.(물론 이미 비영리 영역에 대한 경험이 있더라 해도 단체마다 고유의 업무 스타일이 존재하기에 동일하게 적응 단계는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아요.)
과연 비영리단체의 일하는 방식은 어떠한 특수성이 있을까요?
지금 당장 설명드리고 싶지만!! 그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다른 내용이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길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비영리 영역에 적응하는 이 시기에 가장 먼저 수행해야 할 미션인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생애주기에도 질풍노도한 사춘기 시절이 있듯이 비영리활동가의 업무 주기에도 ‘직업적 사춘기’와 비슷한 것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성장단계 안에서 사춘기를 건강하게 보내지 못하면 이후의 생애 동안 다소 세상을 왜곡해 볼 수 있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처럼, 직업으로서의 사춘기 시간을 잘못 보내면 비영리단체와는 영영 멀어질 수도 있어요.
앞서 간단하게 언급한 바 있는데요, 간혹 비영리단체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입사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봉사활동이나 기부나 후원으로 참여한 이해관계자로부터 출발해 입사까지 하는 케이스에는 그 확률이 더 높고요. 대부분 그런 이들은 입사 전부터 조직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온 경험을 살려 기관에 잘 적응하고 자신이 외부에서 쌓아 온 노하우를 내부에 잘 적용합니다. 하지만 간혹 좋지 않은 경우에는 입사 후에도 외부자의 시선을 여전히 놓지 못한 채 내부의 부족함을 계속 지적하고, 이후에는 조직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까지 이어진 이들도 있었어요.
이처럼 찬양자로 입사했다가 비난자로 퇴사하는 일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과 비견할 만한 통탄의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아쉬움과 분노가 소속 단체를 넘어 비영리 영역 전체로 이어지고, 결국 퇴사까지 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이것은 서로에게 너무나도 큰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습니다. 조직 입장에서는 업무를 함께 하는 동료도 잃고, 향후 조직이 진행할 사회 운동의 참여자도 함께 잃게 되는 것이니까요. 또 개인 입장에서는 경력과 시간을 낭비했다 느낄 수 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고요.
영리와 비영리를 떠나 세상의 모든 일에는 개인적인 사명과 가치관이 반영되지만, 그와 함께 이상과는 현격히 다른 ‘현실’이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이것은 비영리 영역의 일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마련이죠. 아니, 오히려 비영리를 향한 이상적인 기대가 큰 만큼 현실의 벽도 높아서 아쉬움이나 좌절도 그에 비례해 더 클 수도 있어요. 이러한 좌절의 순간, 비영리 영역 안에서 특히나 민감할 수 있는 이 시기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직업으로서의 사춘기 시절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일단 본인이 속한 단체에 잘 흡수되고 적응하는 것이 기본이겠죠. 그래서 앞서 말한 것처럼 스스로 비영리활동가라는 정체성 확립이 무척 중요한 것이에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스스로는 명확히 알아야 일에 대한 의미와 보람을 느끼며 지속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운영하고 있는 사업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기조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고민의식 안에서 세팅되었으며, 기댓값은 무엇이고, 그 수혜는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꼭 기획안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머릿속에는 그런 것이 쫙~ 세팅되어 있어야 해요. 그것이 되어 있지 않다면 아마도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무얼 위해 내가 고생하고 있는지’, ‘나는 누구고, 또 여긴 어딘지’ 등등 계속해서 이어지는 고민들과 불필요한 실랑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란 사람이 비영리활동가라는 정체성이 명확하면 내가 어떤 이름으로 어떤 형태의 업무를 하건 그만큼 몸담은 조직과 담당하는 일에 대한 적응이 수월할 것이고, 반면에 스스로 그것이 어색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불편한 옷을 입은 것처럼 이것저것 일에 대한 고민과 아쉬움이 쌓여 (업무적으로) 방황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런 상태라면 아무래도 오래 활동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죠. 청소년기에 자리 잡힌 건강한 자아를 바탕으로 건강한 성인이 되어가는 것처럼, 우리도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비영리 영역에서의 활동을 건강하고도 주체적으로 이어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자, 이제 앞서 뜸을 들였던 비영리단체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볼까 해요.
비영리단체의 일하는 방식이 영리 기업과 비교해 뭐가 다르냐고요?
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서로 엄청 달라 보일지라도 근본적인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말이 있듯이, 이 땅을 살아가는 그 누구나 희비극을 교차하며 생을 이어갈 수밖에 없죠.)이처럼 일하는 것 자체는 영리나 비영리나 공공영역이나 다 똑같죠 뭐.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고요.
하지만! 비영리 영역은 미묘할지라도 영리 기업이나 공공영역과는 묘~~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지만 또 자세히 바라보면 살포시 차이가 있더라고요.
이를 설명하자면 조금 길 수도 있는 비영리의 거버넌스 이야기를 먼저 살펴보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비영리 영역의 활동가 중에는 이 거버넌스 내용을 영리와 비영리를 나누는 중요한 근거로 꼽는 이들도 제법 많거든요.
(자, 눈 한 번 비비고, 어깨 한 번 펴시고~ 흠흠)
거버넌스(governance)란(요즘 많이 회자되는 ESG를 통해 이미 해당 개념이 익숙하시죠? ESG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는 비재무적 요소로 언급된 경영 테마인데, 그중 G가 바로 governance죠 (나머지 E와 S는 이미 앞서 설명했기에 생략할게요)), 사전적 의미로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주어진 자원 안에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투명하게 의사 결정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제반 장치’를 뜻해요. 매우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조직의 지배 구조’라고 할 수 있겠죠.
그것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역할과 책임 권한을 명확히 하고 그것을 원활하게 구성해 조직의 가장 ‘이익(영리와 비영리에 따라 해당 의미도 달리 해석되겠죠?)’이 되는 판단을 하기 위해 형성되죠.
처음 이 표현은 경영진이나 주주 등의 여러 이해관계자가 있는 영리 기업에서 주로 언급이 되다가, 이제는 차츰 확대되어 다자화되는 글로벌 사회나 정부 차원의 공공영역에서도 흔히들 사용하고 있죠. 최근 정부 및 지자체 단위에서 많이 논의되는 민관협치 프로그램들이 사실은 이러한 거버넌스 논의 차원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그럼 ‘비영리 거버넌스’라는 것이 존재할까요?(최근에는 국내에도 ‘비영리 거버넌스’, ‘굿 거버넌스’ 등의 키워드로 관련한 몇몇 책들이 소개되고 있으니 함께 참고해 보세요.)
네, 물론입니다. 비영리 영역에도 당연히 조직이 구성되어 있고, 모든 조직은 실제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운영하는 이해관계자 단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비영리단체의 경우 대부분의 참여자 및 출연자가 ‘시민’ 단위로 이어지는 곳이 많으니 오히려 영리 기업보다 이해관계자의 범위가 훨씬 더 크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하나씩 비영리 거버넌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 보겠습니다.
비영리단체는 민법 등의 법률에 따라 반드시 ‘이사회’를 두게 되어있습니다. 물론 사단법인이나 조합의 경우 최상위 의사결정기구로 별도 대상의 총회가 있겠지만, 이사회는 비영리단체의 거버넌스에서 기능하는 핵심적인 심의 기구이자 의사결정 체계입니다.
대부분 비영리단체들의 이사진은 별도의 급여를 받지 않는 자원봉사/명예직 형태이며, 각자 자신만의 전문성과 외부 자원 확보 능력으로 해당 단체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수행합니다.(관련한 세부 내용을 확인하고 싶으신 분은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한 <비영리법인 이사회의 운영실태와 개선방안(2021)>을 참고해 보세요.)
하지만 이렇게 법률로 정해진 형태와 달리 개별 비영리단체들은 그 특성이나 상황에 따라 이사회의 구성과 운영 방식이 매우 다양합니다. 각자의 조직 상황에 적합한 유연성을 가진다는 것으로 보면 매우 큰 장점이겠지만, 동시에 특수성이 지나치면 운영 기준 근거가 모호해지는 단점도 함께 있겠죠.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이사회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운영될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당연히 이사회의 구성원들은 해당 단체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지고, 가치와 비전을 공유한 전문 인사가 들어와야겠죠. 단순 ‘이름값’으로 대표하는 형태의 이사진들이 조직 안에 있어도 사실상 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사례를 여럿 보았습니다. 이사회도 나름대로 그 조직의 운영 흐름에 맞춰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진단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죠. (관련해서는 제임스 갤빈이 쓴 <굿 거버넌스(2021)>에서 참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언급한 이사회가 비영리 조직 거버넌스의 핵심일 수는 있겠으나,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안의 이해관계자 풀은 훨씬 더 다양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민사회단체로서는 더더욱 그렇죠. 이사회는 실무 운영 그룹들(대체로 사무처)과의 공감대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조직 전체로 보면 사업 전반에서 단체를 지지하는 회원이나 후원 참여자들, 더 나아가 조직 미션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까지의 참여 루트를 다양하게 확보해야만 합니다.
즉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사결정기구 참여’를 더욱 확장해야 하는 시민단체로서의 존재론적인 의무가 있는 것이죠. 이런 차원에서 바라보자면 이사회(별도 소위원회)와 단체 실무자, 시민참여자 모두가 비영리 거버넌스의 개별 주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림 1. 비영리단체 거버넌스 구조 예시>
이상의 그림처럼 상위의 이사회와 이사회가 선임한 상임이사나 사무총장(비영리조직에서 최고관리자는 정확한 공통적인 직함 없이 사무처장, 사무국장, 사무총장, 상임이사, 실행위원장, 총괄국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요.)이 조직의 하단 실무그룹 간의 중간 다리의 역할을 하며 공동의 비전을 사업 전략과 함께 구축해 갑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림 속 모든 그룹이 서로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협력을 이어가는 형태로 그림을 바라보면 더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또한 상위/하위로 구조화하였다고 해서 꼭 일방적인 방향으로만 거버넌스가 운영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무그룹들은 이사회가 바라보는 비전 가치를 실제 업무로서 실현시켜 주고, 이사회는 실무그룹들이 기대하는 비전 가치 성립을 위한 유무형의 자원과 인프라를 끌어오는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할 뿐이죠. 그리고 실제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해당 거버넌스 안에는 단체의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촘촘히 그 주체가 되어 있는 것이고요.
어떤가요? 이 그림이 당신의 거버넌스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나요?
자, 그렇다면 이야기를 좀 더 이어나가 보죠.
비영리 거버넌스에서 더욱 주의 깊게 살피고 있는 부분이 바로 ‘투명성’의 영역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투명성은 조직의 ‘의사 결정’과 ‘정보 제공’에 대한 투명성을 함께 아우르죠.
비영리단체가 조직 투명성에 더욱 주시하는 이유는 이러한 내외부 신뢰를 바탕으로 기부금을 유치하고, 조직을 운영하며, 공익적 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거버넌스가 자리 잡혀 있지 않으면 내부 점검 영역이 부실해지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가 뒤엉켜 조직의 존재 근거 자체를 흔들어 놓을 수도 있거든요.
누구라도 자신이 정기기부하고 있는 단체가 얼마를 횡령했다는 뉴스를 마주한다면 즉각 기부 해지신청을 할 것입니다. 이는 강한 윤리성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로서는 회복불가능을 뜻합니다. 게다가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비영리 거버넌스의 중요점은 이처럼 투명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입니다. 협력 부서와 상위 부서가 사업 내용을 점검하고 견제하는 조직적 장치를 시스템적으로 구축해야 하는 것이죠. 이렇게 해석했을 때 거버넌스는 조직적으로 보면 일종의 안전장치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영리 거버넌스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조직문화’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비영리단체 구성원의 대부분은 자발성과 자율성, 참여지향성 등을 바탕으로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고자 하죠. 따라서 비영리단체는 일반 민간기업과는 달리 조직구성원의 태도와 동기에 의해 조직 성과가 크게 좌우되는 곳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거버넌스는 위계적이고 관료적인 조직을 형성하게 됩니다. 만약 내가 속한 조직이 그렇다면 어찌 될까요? 내재적 보상을 얻을 수 없는 이들이 차츰 자리를 뜨게 되고, 그 자리는 경험과 비전 공유가 부족한 이들로 겨우겨우 채워지지만, 그도 오래 버틸 수 없는⋯ 이러한 악순환에 빠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자연히 그 조직은 시민들과 유리된 채 서서히 하향곡선을 타는 단체로 전락하겠죠. 그렇기에 실무자 그룹의 의사소통과 정책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실제로 빠른 곡선으로 성장하던 한 비영리단체가 그 속도에 맞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일하던 직원들이 모조리 빠져나가 어느 순간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영세해진 케이스도 있어요.)
앞서 <3. 진입> 퀘스트에서 말했던 것처럼 비영리 영역은 거버넌스의 차원에서 조금 더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그 근원을 쫓다 보면 우리나라 시민사회의 전통과도 연결이 되어 있는데요, 한국 시민사회의 시작과 성장이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민주화 운동을 기점으로 하기에 권력 독점에 대해 굉장히 예민했고 당연히 민주적인 거버넌스 구성에 힘을 쏟았겠죠.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조직의 내부가 민주화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상대방에게 동일한 논리를 요구할 수 있겠어요? 이러한 역사적 흐름이 녹아져 있기에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비영리단체 내부에는 수평적인 거버넌스에 대한 일종의 열망(?), 낭만(?) 같은 것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무척 중요하죠. 조직 안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받아들여질 때야 비로소 조직과 소통하고 있다 느끼고, 그로 인해 조직의 공동체성도 함께 강화되잖아요. 게다가 시민운동단체들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연대를 중심으로 사회를 바꿔가고 있고요. 이런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는 현재의 거버넌스 흐름에 있어서 조직문화의 장점으로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영리 기업에도 유연한 조직문화를 강조해서 점차 이러한 참여형 의사결정구조를 세팅하는 케이스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요. 그간 회의 주체자가 팀의 장(長)이었다면 이제 그 역할이 단순 ‘지도자’가 아닌 ‘조율자’로 전환되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고민의식을 가진 이들이 많아지자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결정을 구성할 수 있는 플랫폼도 생겨나기 시작했어요.(‘사회적협동조합 빠띠’와 같은 기관들이 그러한 역할들을 하고 있다고 해요.) 실제로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조합원 1인 1 투표라는 의사결정시스템이 잡혀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조직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비영리단체 안에 꽤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 조직 문화 특유의 지난한 판단 과정이 조금 답답해 보일 수도 있거든요. 특히 사업 판단의 속도가 빠른 영리 기업에서 이직한 분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이질적으로 느꼈던 부분도 바로 이런 숙의적인 의사결정 과정일 것 같아요.
함께 논의한다는 것은 무척 아름다운 말 같은데, 실제 경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 안에서 무척 고생한 경험이 많을 겁니다. 왜냐하면 참여하는 사람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그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결정 타이밍을 잃어 이미 사업적 시의성을 놓치는 경우마저 발생하거든요. 다자간의 소통 과정은 그 속도를 비교했을 때 탑-다운 방식과는 달리 반응이 더디고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죠. 사업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적용 시기가 굉장히 중요할 때가 있는데 사업 운영 담당자 입장에서는 지지부진한 결정 과정 안에서 애가 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죠.(실무자님, 이 타이밍에 눈물 한 번 흘리고 가실게요.)
하지만 되돌려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비영리단체들이 애써 고수하고 있는 이유 또한 따로 있지 않을까요?
맞아요. 그것은 앞서 한국 시민사회의 전통을 통해 간단히 설명드린 것처럼, 비영리단체들은 빠른 결정과 그 판단에 의해 발생되는 폭력성에 대한 깊은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결정에는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또 손해를 보는 사람도 발생하잖아요.
그렇기에 모든 판단에는 세심함이 필요하죠.
하지만 리더의 탑-다운 방식의 결정은 조직 안에서의 섬세함을 담보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조직의 리더가 모든 실무 단위의 디테일한 상황과 조건을 다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니까요.) 실제로 그러한 탑-다운적인 리더십에 반대하여 이러한 버텀-업 거버넌스 체계가 가능한 비영리단체에 매력을 느껴 이곳에 진입한 이들도 많고요. 그렇기에 아마도 대부분의 비영리단체들은 빠른 결정 과정과 느린 숙의의 과정을 서로 비교했을 때 전자가 더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최근에는 이러한 경향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같습니다. 몇몇 대형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출신의 리더가 영입되어 자신의 역량과 비전을 가지고 조직을 바꿔가고자 하는 단체들도 하나둘 늘어가고 있습니다. 개별의 장단에 대한 판단은 당신께 맡기며⋯ )
또한 이러한 공론장의 의제 구체화 과정을 통해 공동체성이 강화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이 갈무리되고서는 다시 하나의 목표로 함께 달릴 수 있는 것. 동료애가 다른 것이 아니죠. 꼭 목적지에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나요? KTX를 탈 수도 있고, 자가용으로 갈 수 있고, 때로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것이죠. 사람에 따라 방식을 달리하지만 함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면 뒷자리에서 투덜거릴 필요 없이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할 지름길을 지도로 찾아 제안하는 것이 훨씬 더 긍정적인 모습인 것 같습니다. 물론 출발 전에 서로 적당한 속도를 사전에 맞춰야겠지만요.(당신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자고 제안한다면 당연히 당신과 함께 가고자 하는 동료의 수는 무척 적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